본관은 반남(潘南). 할아버지는 박제당(朴齊堂)이고, 아버지는 판서 박원양(朴元陽)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이윤행(李潤行)의 딸이다. 동생이 박영효(朴泳孝)이다.
1878년 음보(蔭補)로 금성현감(金城縣監)을 지내고 1881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수찬(修撰)이 되었으며, 통리기무아문주사(統理機務衙門主事)를 거쳐 승지(承旨)가 되었다. 1882년 『지구도경(地球圖經)』을 저술하였으며, 1883년에는 전라도암행어사가 되어 활동한 뒤 다시 승지에 임명되었다.
1884년 12월 4일 아우 박영효와 김옥균(金玉均)·홍영식(洪英植) 등 개화당(開化黨)이 일으킨 갑신정변에 함께 가담, 우정국(郵政局)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사대당(事大黨) 요인들을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그러나 청군(淸軍)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김옥균·박영효·서광범(徐光範)·서재필(徐載弼)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였으며, 자신은 홍영식과 더불어 끝까지 왕을 호위하다가 사대당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1894년 12월 죄명이 효주(爻周: 사실 조사에서 잘못을 정정하여 표(×)로 표시하던 것으로 죄없음을 의미함)되고 복관(復官)되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