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안악(安岳)의 교생으로 용맹이 뛰어났다. 정여립(鄭汝立)과 알게 되면서 서로 의기투합하여 함께 거사계획을 세웠다. 역모를 도모하면서 가명을 쓰기도 하였는데 안악에서는 본명을 쓰고, 전주에서는 변사(邊涘), 동래에서는 백일승(白日昇)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 뒤로 은밀히 정여립과 연락하면서 같은 안악사람 박연령(朴延齡), 해주사람 지함두(池涵斗) 등과 함께 주로 황해도 일대를 중심으로 거사동지들을 규합하고 군사를 일으켜 이씨정권을 타도할 계획을 추진했으나 함께 일을 도모하던 교생 조구(趙球)가 안악군수에게 붙들려 모의 사실을 실토하였다.
이에 안악군수 이축(李軸), 재령군수 박충간(朴忠侃), 신천군수 한응인(韓應寅) 등이 역모사건을 고변하자 변숭복은 안악에서 전라도 금구(金溝)까지의 먼 길을 3일 만에 달려가서 정여립에게 알렸다. 정여립과 그날로 함께 도망하여 죽도(竹島)에 숨었으나 이 사실을 안 진안현감 민인백(閔仁伯)의 군사에 의하여 포위되자 목을 찔러 정여립과 함께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