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숭복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정여립과 함께 역모를 도모하여 기축옥사의 발단이 된 유생.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89년(선조 22)
관련 사건
기축옥사
목차
정의
조선 전기에, 정여립과 함께 역모를 도모하여 기축옥사의 발단이 된 유생.
생애 및 활동사항

본래 안악(安岳)의 교생으로 용맹이 뛰어났다. 정여립(鄭汝立)과 알게 되면서 서로 의기투합하여 함께 거사계획을 세웠다. 역모를 도모하면서 가명을 쓰기도 하였는데 안악에서는 본명을 쓰고, 전주에서는 변사(邊涘), 동래에서는 백일승(白日昇)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 뒤로 은밀히 정여립과 연락하면서 같은 안악사람 박연령(朴延齡), 해주사람 지함두(池涵斗) 등과 함께 주로 황해도 일대를 중심으로 거사동지들을 규합하고 군사를 일으켜 이씨정권을 타도할 계획을 추진했으나 함께 일을 도모하던 교생 조구(趙球)가 안악군수에게 붙들려 모의 사실을 실토하였다.

이에 안악군수 이축(李軸), 재령군수 박충간(朴忠侃), 신천군수 한응인(韓應寅) 등이 역모사건을 고변하자 변숭복은 안악에서 전라도 금구(金溝)까지의 먼 길을 3일 만에 달려가서 정여립에게 알렸다. 정여립과 그날로 함께 도망하여 죽도(竹島)에 숨었으나 이 사실을 안 진안현감 민인백(閔仁伯)의 군사에 의하여 포위되자 목을 찔러 정여립과 함께 자결하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기축록(己丑錄)』
집필자
홍순만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