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중구(仲裘), 호는 매원(梅園). 영의정 서지수(徐志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서유신(徐有臣)이고, 아버지는 대제학 서영보(徐榮輔)이며, 어머니는 정상인(鄭象仁)의 딸이다. 자신을 포함한 5대에 걸쳐 세 사람의 상신(相臣: 정승)과 네 사람의 대제학을 배출한 가문이다.
1827년 (순조 27)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1833년 이조참의, 1837년(헌종 3) 대사성, 1838년 이조참판을 거쳤고, 184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그 뒤 한성부판윤·대사헌·예조판서를 거쳐 1850년(철종 1) 대제학이 되고, 1851년 병조판서, 1853년 이조판서에까지 승진하였다.
그밖에도 경상도관찰사와 판의금부사 등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역임하였다. 집안은 명문벌열가문이었지만 청렴을 가풍으로 삼았다. 특히 서기순 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청빈함을 강조하여 집이 비바람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다고 한다. 홍한주(洪翰周)는 서기순을 일러 “현달하고도 이처럼 한미하게 사는 선비는 오직 이 사람뿐”이라고 평가하였다. 순조조에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시호는 청문(淸文)이다.
저서로는 『종사록(從仕錄)』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