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천지(天支), 호는 우졸재(迂拙齋). 박돈인(朴敦仁)의 아들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3년(성종 14)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고 1485년 문과별시(文科別試)에 급제하였다.
전생서직장(典牲署直長)에 제수된 뒤 한성부참군·사헌부감찰·사간원정언·성균관전적 등을 지내고 부모의 봉양을 위하여 자진해서 창녕현감으로 나왔다. 이때 백성들을 지성으로 보살피고 교화시켜 임금이 비단과 교서(敎書)로서 포상, 가자(加資)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다시 내직으로 들어가 종부시주부를 거쳐 1497년(연산군 3) 사간원헌납이 되었다. 이때 연산군의 실덕(失德)을 직간(直諫)하였고, 또 임사홍(任士弘) 등의 간악함을 탄핵하는 차자(箚子)를 올렸다. 연산군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자 외직을 청하여 평해군수·예천군수 등을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門徒)로 붕당을 지어 국정을 비방한다는 죄명으로 장(杖) 80대에 평안북도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다. 1500년 평안도로 이배되었는데, 이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당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고, 1517년 김정(金淨)·조광조(趙光祖) 등의 계(啓)에 의하여 도승지 겸 예문관직제학이 추증되었다. 밀양 예림서원(禮林書院), 함안 덕암서원(德巖書院), 대구 남강서원(南岡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우졸재집(迂拙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