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파괴된 상태로 알려졌다. 예성강(禮成江) 우안(右岸)에 위치해 있다.
이 유적은 지표하 1m정도의 깊이에 있는 토광묘(土壙墓)로 보인다. 유물은 한국식 동검 1점, 동과(銅戈) 1점, 쇠도끼 1점, 검파두식(劍把頭飾) 1점 등 4점이 출토되었다.
한국식 동검은 결입부(缺入部)가 뚜렷하고 등대에는 능각(稜角)이 기부(基部) 가까이까지 선명하게 나 있고, 검날[刀部]의 피홈[血溝]은 비교적 길다. 전체 길이 29.5㎝, 최대 너비 3.3㎝, 경부(莖部) 길이 2.5㎝이다.
동과는 등대에 능각을 세운 형식으로 능각은 관부(關部) 근처에까지 이르고 피홈에는 2개의 구멍[穿孔]이 나 있다. 관부는 비교적 넓고 날과 관부에 이르는 호선은 많이 휘어 부드럽다. 등대 좌우의 날은 좌우의 너비가 균등하지 않아 비대칭적이며 길이 28.5㎝, 내(內 : 莖部)의 길이 3.3㎝이다.
쇠도끼는 날쪽[刀部]의 폭이 좁고 공구(銎口)쪽이 넓은 형태이나 비교적 폭이 좁은 장방형의 주머니도끼로 주조품(鑄造品)일 가능성이 크다. 공구 안쪽의 소켓은 사다리꼴로 좁아지며 길이 15.5㎝, 너비 5.5∼6.2㎝이며, 두께는 가운데 부분이 6㎝정도이다.
검파두식은 형태가 정확하지 않지만 입주상(立柱狀)의 장식이 붙은 十자형의 것으로 생각되며 높이 4.9㎝, 밑판의 길이 3.8㎝이다.
이 유적은 한국식 동검과 검파두식 · 동과 · 쇠도끼 등을 표식으로 하는 한국식 동검 관계의 일괄유적이다. 단지 쇠도끼의 제작과정이 불분명한 점이 있지만 주조품일 경우 청동기와 철기의 이행과정을 보이는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적은 최근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유적의 연대는 청동기시대 후기, 즉 서기 2세기 전기 초반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