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조사되어 3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유적의 층위관계는 비교적 단순하다. 경작층으로 부식된 두께 20∼25㎝ 가량의 표토층과 다시 20∼30㎝ 정도의 검은 사질토층의 유물포함층이 있다.
그 아래는 두께 20㎝ 내외의 황갈색토양층이 끼여 있고, 밑으로는 1㎝ 정도의 흰 모래층으로 된 생토층이 있다. 주거지는 대체로 표토 하 50㎝ 깊이인 유물포함층 바닥에 위치한다. 대부분의 유구는 심하게 파괴되거나 잘려나가 크기나 규모는 확실하지 않다.
조사된 주거지의 평면구도는 방형이나 장방형으로 보이며 움의 깊이는 20∼30㎝ 정도로 비교적 얕다. 주거지의 바닥에서는 기둥구멍이나 화덕자리 등의 내부시설은 발견되지 않았다. 바닥은 모두 진흙다짐으로 평평하게 한 다음 불에 구워 단단하게 하였다. 그 두께는 얇은 바닥이 5∼7㎝, 두꺼운 바닥이 10∼15㎝ 가량이다.
출토유물은 토기와 석기가 대부분이다. 토기에는 진흙과 모래가 섞인 태토로 만들어진 적갈색의 공렬무늬토기·꼭지손잡이가 달린 납작밑토기[平底土器]와, 태토가 비교적 곱고 검정색깔이며 작은 그릇의 아가리와 몸통부분에 평행선과 사선무늬가 넣어진 토기들이 있다.
석기는 단면 원형 또는 타원형인 돌도끼류, 무경삼각만입식(無莖三角彎入式)을 포함하는 돌살촉, 홈자귀, 구멍이 하나이며 양쪽 날인 반월형석도, 대팻날, 토제와 석제로 된 가락바퀴, 단면이 볼록렌즈형인 간돌검조각과 숫돌 등이 있다. 그 밖의 유물로 뼈로 만든 송곳과 흑요석조각·석영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의 연대는 출토유물로 보아 청동기시대 후기 유적으로 추정된다. 주변의 영흥 유적·소라리 유적과 함께 동해안 청동기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