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정사화의 아들 정훈석(鄭薰錫)이 편집하고 간행하였다. 권두에 조긍섭(曺兢燮)의 서문과 권말에 이후(李垕)의 발문이 있다.
2권 1책. 목활자본. 영남대학교 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52수, 서(書) 15편, 기(記) 1편, 잡저 4편, 제문 11편, 권2에 부록으로 만사 5편, 제문·가장(家狀)·행장·묘지·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 가운데에 「상난석이방백근필(上蘭石李方伯根弼)」은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전파한 천주교와 기독교의 폐단을 말하고 그것을 배척할 것을 내용으로 한 글로서 관찰사에게 올린 것이다. 정사화는 유학을 강론하고 행실을 닦음으로써, 즉 경명행수(經明行修)를 통하여 그 폐단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잡저 중에 「유사문(諭蛇文)」은 뱀을 효유(曉諭)하는 재미있는 문장이다. 한유(韓愈)의 「제악어문(祭鰐魚文)」을 본떠 지은 듯한 이 글은 희작으로 지은 것이다. 인간에게 해독을 주는 뱀에게 경고하고 만약 없어지지 않는다면 족속을 없애겠다고 하였다. 여기에서의 뱀은 실제의 뱀이 아니고 당시의 시대사정과 관련하여 제국주의의 침략을 경고하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고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사문(攻邪文)」은 서양의 종교를 공박하기 위해 지은 글이다. 서양 종교의 유입으로 남녀의 구별이 없어졌으니 인륜의 폐단이다. 제사를 폐지하였으니 예(禮)를 파괴한 것이다. 법도와 강상(綱常)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달리하게 하였으니 마땅히 배척해야 된다는 내용이다. 정사화 나름대로 철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성음설(聲音說)」은 인간의 언어는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음양의 기(氣)에 따라 청탁(淸濁)과 정사(正邪)가 달라진다고 하는 내용이다. 「서설경헌정전설후(書薛敬軒井田說後)」는 정전제의 역사적 변천과 자기의 견해를 제시한 글이다.
『백치유집』은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서울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영남의 선비가 어떤 역사적 위치에서 사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