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대시(大始), 호는 길운(吉雲)·주항(蛛舡).
1855년(철종 6) 역과(譯科)(전공 한학(漢學))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개화기에 무비자강(武備自强)을 위한 청나라로 유학생 파견을 주선하기 위하여 청자문(請咨文)을 가지고 1880년(고종 17) 별뢰자관(別賚咨官)으로 청나라에 파견되어 이홍장(李鴻章)과 4개조로 된 조선국원변래학제조조련장정(朝鮮國員辨來學製造操練章程)을 체결하여 성공적인 외교교섭으로 유학생 파견을 가능케 하였다.
1881년 영선사(領選使) 김윤식(金允植)을 따라 별견당상(別遣堂上)으로 파견되어 군기제조 학습을 위한 유학생단을 인솔하고 청나라에 건너가 그 곳에 머물며 3차에 걸친 김윤식과 이홍장 회담에 참석하였다.
귀국 후 1882년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정각사(征搉司)의 참의를 거쳐 1884년 기계국방판(器械局幫辦)이 되고 이어 지돈녕부사·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