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3.7m. 198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3매의 장대석으로 지대석(地臺石)을 마련한 후 갑석(甲石)과 면석(面石)이 하나의 석재로 조성된 단층기단을 놓았다.
갑석의 상면에는 별석(別石)으로 조성된 각형 3단의 초층 탑신 받침을 놓았다.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석으로 조성되었다. 매층 옥신석의 각 면에는 양 우주(隅柱)가 모각되었는데, 상면으로 갈수록 급격한 체감(遞減)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매층 각형 3단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었다.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데,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 전각에 이르러 둔중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가 남아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82년에 해체 · 복원하였다.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상주군 화북면에서 광산을 운영하던 일본인이 광부를 동원하여 탑의 위층을 파손하고 도굴해 갔다고 한다. 이후 마을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으나, 일본인 마에다(前田)가 이곳에 광산을 설치하고, 탑을 복원한 후부터 마을이 평안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