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불상 높이 503.3㎝, 무릎 폭 341㎝. 보타사 대웅전 뒤쪽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에는 높이 약 5m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바위는 앞쪽으로 ‘ㄱ’자 모양으로 돌출해 자연스럽게 지붕을 이루고 머리의 좌우 측면에는 직사각형의 홈을 파낸 흔적이 남아 있어서, 이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마애보살상은 바위의 곡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새겨졌는데, 인위적인 효과를 최대한 억제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우리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보살상의 불신에는 백의관음을 연상시키듯 하얗게 호분을 발랐고, 어깨 위로는 검은 보발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머리에는 삼면 절첩형의 보관을 썼고, 보관의 좌우에는 뿔 모양의 관대가 수평으로 뻗어 있다. 관대의 아래에는 타원형의 영락 장식이 무겁게 달려 있는데, 전반적인 표현 양상은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흡사하다.
갸름한 얼굴에 이마는 좁고 양미간에는 동그란 백호를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활처럼 휘어진 눈썹과 눈초리를 치켜 올린 긴 눈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콧방울에 힘을 넣은 코는 매부리코 모양으로 실재감이 느껴진다. 인중은 뚜렷하고 작은 입술은 살며시 다물어 옅은 미소를 풍기고 있다. 넓은 얼굴에 비해 이목구비는 얼굴 중심에서 오밀조밀하게 몰려 표현되었는데, 이는 조선 초기의 요소로 생각된다. 이목구비는 단정하게 표현되었고, 좁고 길게 늘어진 귀에는 둥근 귀걸이를 착용하였다. 목에는 삼도를 뚜렷하게 표현하였고 팔에는 둥근 민무늬의 팔찌를, 목에는 물결무늬를 새겨 넣은 넓은 띠 모양의 목걸이를 부착하였다.
신체는 암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새겼으며 불신에는 천의를 걸쳤다. 양어깨를 덮은 천의는 불신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렸고, 가슴에 비스듬히 걸친 조백(條帛)은 왼쪽 가슴 부근에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十’자형으로 멋스럽게 교차시켰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엄지와 검지를, 왼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오른손과 달리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는데 양손의 표현이 다소 어색하다. 길상좌를 취한 큼직한 두 발은 옷 밖으로 드러냈으며, 발목 주변에만 사선 주름으로 간결하게 처리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여백으로 남겨 놓았다. 주름 선은 강약의 변화가 거의 일정하며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
이 마애보살좌상의 삼면 절첩식 보관과 뿔 모양의 관대, 타원형의 보관 장식, 천의식 착의법 등은 인근에 있는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거의 같은 형식과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지만, 세부 표현에서 다소 소략하고 도식화되었다. 이는 보타사 마애보살상은 옥천암 마애보살상을 토대로 같은 시기 또는 약간 늦은 시기에 조성된 것임을 시사한다.
이 상과 관련한 기록은 전하는 것이 없지만, 마애좌상의 향우측 원패 모양의 각석에 ‘남무금강회상불보살(南無金剛會上佛菩薩)(중), 도리회상성현중(忉利會上聖賢衆)(좌), 옹호회상신지등(擁護會上神祗等)(우)’의 명문이 남아 있어 마애보살상의 성격 및 신앙 배경과 관련하여 주목된다.
이 마애보살좌상은 제작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전하는 기록이 없어 신앙적 배경이나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양식상 고려 말 조선 초에 조성된 불상들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특히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거의 같은 도상 · 양식적 특징을 보인다. 이 마애보살좌상은 옥천암 마애보살좌상과 쌍벽을 이루는 마애보살상으로, 고려 말 조선 초 불교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