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1959년 10대손 태석(泰錫)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태석의 지(識)와 구행서(具行書)의 발문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과 강주진(姜周鎭)이 소장하고 있다.
권1에 시 66수, 부(賦) 2편, 소 4편, 서(書) 16편, 서(序) 1편, 기(記) 3편, 문(文) 5편, 묘지 1편, 잡저 2편, 권2는 부록으로 만사 12편, 제문 3편, 비명 1편, 문 4편, 기 2편, 소 3편, 계(啓) 2편, 차(箚) 1편, 시 25수, 연보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자신의 심적 갈등을 표현한 술회시(述懷詩)가 대부분이고 서경(敍景)·영물(詠物)의 시도 있다. 1615년(광해군 7)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가 강원도 홍천으로 귀양가는 이원익(李元翼)의 충절을 찬양한 시는 그의 의리정신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소의 「진시사소(陳時事疏)」는 인재의 등용이 잘못되어 임금의 덕화(德化)가 백성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인사정책의 쇄신을 강력히 주장한 글이다.
「진군덕소(陳君德疏)」는 1634년(인조 12) 저자가 장령(掌令)으로 있을 때 올린 상소문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공신들에 의한 정치의 폐단을 지적하며 시무(時務)와 군학(君學)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는 이 상소로 인하여 삭직(削職)되고 이듬해 충청도 은진으로 부처(付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