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유적은 부여∼대천간 국도변의 속칭 ‘동막정 삼거리’ 부근에 있다.
남쪽 약 800m 지점에 백제의 테뫼식[山頂式] 산성인 논치산성(論峙山城)이 있고, 동북으로 2㎞ 떨어진 구봉리에도 테뫼식의 백제산성이 있다. 인근의 알력마을에는 백제 때의 폐고분이 여러 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분의 북서쪽으로 낮은 야산이 잇달아 있으며, 남쪽은 탁 트인 평야지대이다. 이 평탄지형은 그대로 부여 백마강변 농경지와 연결되고 있다.
고분은 낮은 구릉의 남쪽 경사면에 노후한 자연암반층을 파내고 무덤구덩이[墓壙] 안에 고분의 뚜껑돌[蓋石]까지 완전히 묻히도록 한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중심 장축(長軸)은 남북 자오선상에서 약 3°가량 편서(偏西)하였다.
널방의 규모는 내부 바닥을 기준으로 남북 길이 2.22m, 동서 너비 1.19m, 높이 1.09∼1.19m의 규모이다. 벽면은 화강암의 자연판석을 규모에 맞춰 잘라 안쪽과 접촉면을 다듬어서 북벽은 1장, 동벽은 2장, 서벽은 3장을 써서 구축하였다.
천장은 판석을 사용해 고분의 횡단면이 6각형이 되도록 동서 벽면의 윗부분을 안으로 꺾은 이른바 꺾임천장식[平斜天障式], 혹은 귀접이식이다. 4장의 뚜껑돌로 덮었다.
바닥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납작한 잡돌을 정교하게 귀를 맞추어 깔았다. 이 바닥돌의 아래층은 두께 10∼15㎝ 가량의 모래층으로서, 특별한 배수시설이 없어도 자연배수가 되도록 하였다.
널방[玄室] 입구 양쪽에는 석주형(石柱形) 판석을 세우고 너비가 다른 2장의 판석을 세워 막았다. 입구 아래에는 문하방석(門下方石)을 끼웠다.
널길은 남벽면 중앙에 설치되어 길이는 약 70㎝ 가량이다. 뚜껑돌로는 자연판석 1장을 이용하였다. 입구는 잡석과 흙으로 채워 이중으로 폐쇄하였다.
유물은 훼손되지 않은 완전한 고분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널[木棺]에 박았던 쇠못 몇 점만이 널방 바닥에서 수습되었을 뿐이다.
이 고분은 백제 후기에 조영된 무덤으로서, 같은 형태의 묘제는 부여를 중심으로 한 충청남도와 전북특별자치도 일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다.
무덤에서 껴묻거리[副葬品]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중국의 박장제(薄葬制)의 영향이나 장법상(葬法上) 복장제(復葬制)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