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은 물체가 빛을 받을 때 파장에 따라 드러나는 고유한 색이다. 우리말 사전에서 빛깔은 색채와 같은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인간의 시각 체계에서는 태양 광선이 장파·중파·단파의 영역으로 분리 작용할 때, 빨강·초록·파랑이라는 색 감각이 생긴다. 정상인의 시각으로는 약 900만 가지의 빛깔을 식별할 수 있다. 뉴턴은 프리즘을 통한 7가지 빛깔의 발견으로 색채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서양의 색표계는 빛의 파장의 길이에 따라 색 감각을 좌표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양오행설에 근거 다섯 가지 기본색을 도출했다.
우리말 사전에 의하면 빛깔은 색채와 같은 뜻으로 풀이되고 있으며 빛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색채(빛깔)라고 말할 정도로 빛깔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예로부터 많은 학자들은 색채의 신비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뉴턴(Newton,I.)의 프리즘을 통한 7가지 빛깔의 발견은 색채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양 특유의 오행 사상(五行思想)에 근거하는 다섯 가지 기본 색을 도출하여 생활화하였다. 이와 같은 오행적 색채 사상은 오랫동안 우리의 색채 문화와 의식을 지배하였다. 빛깔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뜻으로서 다소간 빛깔의 개념에 접근할 수 있다.
① 빛으로서의 빛깔 : 태양 광선은 여러 가지 길이의 파장(波長)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이 빛깔의 근본이 되고 있다. 사람은 시각을 통해서 빛에 의한 다양하고 미묘한 빛깔의 변화를 지각한다. 빛이 다름에 따라 우리 주변의 빛깔의 변화도 달라지는 현상은 누구나 쉽게 관찰할 수 있고 경험하는 일이다. 빛이 없는 곳에는 색채도 존재하지 않는다.
② 물감으로서의 빛깔 : 여러 가지 물감 · 색소 · 색료 · 안료 등은 그 특성에 따라 어떤 빛의 파장이 반사, 투과, 흡수되는 힘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③ 감각(感覺)으로서의 빛깔 : 빛깔은 우리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 내재(內在)하는 감각이다. 우리들의 눈의 감각은 오직 외부의 빛이 눈을 자극할 때만 색채의 감각을 형성하게 되어 빛이 없으면 색채 감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빛이 눈에 닿아 생기는 감각이 색채 감각이며, 고등 동물은 이 감각을 두뇌 작용으로 풀이함으로써 색채를 지각하게 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로는 빛의 자극에 의한 색채 감각이 뇌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색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④ 정보(情報)로서의 빛깔 : 빨간색 신호등이 켜지면 정지하고, 파란색 신호등이 켜지면 진행한다. 또한 음식의 색깔이 변한 것으로써 상한 음식을 식별하고, 얼굴이나 몸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빛깔의 변화로써 질병을 판단할 수 있다. 즉, 빛깔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전달해 주는 기호이다.
⑤ 에너지로서의 빛깔 : 여러 가지 빛깔은 각각 다른 파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파장은 X선 · 감마선 · 자외선 등과 같은 각각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질병 치료나 그 외 생활에 활용되고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시각 체계 가운데에는 세 가지의 기본적인 색채 감각의 체계가 있다. 태양 광선이 장파(長波) · 중파(中波) · 단파(短波)의 영역으로 분리 작용할 때 빨강(red) · 초록(green) · 파랑(blue)이라는 색 감각이 생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빛의 파장이 서로 결합하는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빛깔을 느끼게 된다. 정상인의 시각으로는 약 900만 가지의 빛깔을 식별할 수 있다.
세 가지의 기본적인 색 감각이 두 가지씩 동시에 작용하면 2차적인 색 감각을 이루게 된다. 이것을 노랑(yellow) · 선홍(magenta) · 파랑(cyan)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세 가지 색을 빛의 삼원색(三原色), 후자의 것을 물감의 삼원색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자의 빨강 · 초록 · 파랑, 후자의 노랑 · 선홍 · 파랑 등을 우리는 색상(色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와 같은 명칭은 여러 가지 색 감각에 부여한 색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서양의 색표계가 빛의 파장의 길이에 따라 다른 색 감각을 그 특성별로 좌표화한 것이라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색표계는 음양오행적인 우주관에 바탕을 둔 다섯 가지 정색(正色)과 다섯 가지 간색(間色)을 음양으로 배치한 것이다. 10가지 색을 기본 색으로 하고 명도와 채도는 자연현상의 명암 청탁(明暗淸濁)에 비유한 기억 색명으로 나타내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많은 빛깔의 이름에는 모두 그 유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빛깔의 출처, 색료 등에 따라서 명명된 것이 많다. 치자색(梔子色)은 치자나무 열매에서 채취한 염료에서 유래하며, 꼭두서니(붉은색)는 꼭두서니[茜草]라는 다년생 덩굴에서 유래한다. 송화색(松花色)은 소나무에서, 연지색은 연지벌레에서, 남색(또는 쪽빛)은 일년생 풀인 쪽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외에도 유청색(柳靑色) · 창백색(蒼白色) · 유백색(乳白色) · 옥색(玉色) · 주토색(朱土色) · 도홍색(桃紅色) · 구색(鳩色) · 비색(緋色) · 휴색(髹色) · 연두색(軟豆色) · 청현색(靑玄色) 등은 모두 자연현상이나 사물의 빛깔을 관찰하여 색 명칭을 붙인 것이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빛깔 명칭에는 하늘색이라든지 배추색 · 수박색 등 주로 기억 색명이 많다. 그러나 여러 가지 빛깔을 이처럼 말이나 글로써 이름을 붙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 정확한 빛깔의 특성과 차원을 알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식별할 수 있는 수많은 모든 빛깔에 일일이 그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기억 색명이나 관용 색명은 빛깔에 대한 의사 전달의 차원에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색 명칭으로써는 색 지각 공간(色知覺空間)상의 어떤 특정한 색의 좌표를 정확히 지각할 수는 없다.
색채는 색상 · 명도 · 채도로 구성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요소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색을 지각해야 한다. 우리들이 시각적으로 많은 색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세 가지 속성 때문이다. 색채에 대한 지각은 말과 글로써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시각을 통해서 직접 경험하고 지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기억 색명이나 관용 색명이 개발되어도 900만 가지의 빛깔에 모두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빛깔을 내는 여러 가지 물감 · 색료 · 안료 · 염색 등은 그 출처가 다양하다. 이러한 모든 물감은 기본적으로 색소(色素)와 용제(溶劑)의 혼합물이다. 물감은 출처 · 색상 · 화학 약품 · 합성 및 혼합에 따라 다르며 흙 · 광물 · 식물 · 동물 · 합성 재료 등에서 얻어진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석회 · 황토 · 주철(朱鐵) 등과 같은 광물질과 피 · 지방 · 우유 등의 용제로써 물감을 제조하였다.
이집트 시대에는 점토, 식물의 즙, 동물에서 추출한 아교 · 왁스 · 수지 등으로써 혼합하여 접착력이 있는 물감을 만들어 벽화 제작에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과 같이 인공 염료가 발달한 시대에도 흙과 용제를 혼합하여 물감을 만들어 사용하는 화가도 있다. 그리고 식물을 재배하여 천연 식물 염료를 만들어 쓰는 염색 공예가도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청염장(靑染匠) · 홍염장(紅染匠) · 초염장(草染匠) 등으로 전문화되었으며 여러 가지 출처에서 물감을 개발하였다. 빛나는 흰색을 나타내기 위해서 무명을 뽕나무 잿물로 삶아 표백하였다. 그리고 치자색 · 연지색 · 쪽빛 물감 등 식물성 물감을 많이 개발하여 사용하였다. 여러 가지 출처에서 안료를 개발하여 우리나라 건축의 고유한 채색 장식법인 단청(丹靑)과 같은 색채 문화를 이룩하였다.
물감은 식물과 동물에서 채취하는 유기 물감과 광물 등으로 만드는 무기 물감 그리고 합성 물감으로 나눌 수 있다. 오늘날에는 공업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물감이 발달하여 섬유 · 비닐 · 알루미늄 · 플라스틱 · 콘크리트 · 건축 자재 등 어떠한 재료에서나 다양한 빛깔을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한층 더 우리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해 준다.
19세기 초에 이르면 인공 염료가 개발되어 천연 염료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856년 영국에서 말라리아의 특효약인 키니네를 합성하는 실험에서 예기치 않았던 적자색(赤紫色) 아닐린 염료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이 모브(mauve)라고 명명된, 사상 최초의 인공 합성 염료였다.
이러한 인공 염료의 개발은 인류 생활뿐만 아니라 미술에까지 커다란 발전을 초래하였다. 미술에 있어서는 크롬 · 카드뮴 · 코발트 등으로 만들어지는 물감이 개발됨에 따라서 인상파 이전의 다갈색(茶褐色)이 세계에서 해방되어 화려하고 혁명적인 현대 미술의 길이 개척될 수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초부터 비롯된 조형 예술의 순수성과 자율성도 이러한 물감의 발견과 개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어떠한 시대에서나 인간의 감정 표시는 색채와도 결부되어 왔다. 어떤 특정한 색깔이나 배색에 대해서 각각 다른 연상(聯想) · 기호 반응(嗜好反應) · 편견 반응 · 상징성을 나타내어 왔다. 빛깔에 대한 연상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통계 조사에 의하면 동일한 경험 · 생활 · 문화권의 사람들의 빛깔에 대한 연상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개인 · 연령 · 성별 · 지역 · 국민성 · 시대 · 문화 · 종족 등에 따라 어떤 공통성을 나타내게 된다.
빛깔에 대한 연상적 가치가 발전하여 어떤 통념을 형성하게 되면 어떤 특정한 빛깔에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되게 된다. 빛깔에 대한 기호 반응은 개인이나 집단이 어느 특정한 빛깔이나 배색에 대해서 좋아하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편견 반응은 주로 죽음, 장례, 정치적 · 종교적인 의의에 관련되는 것일 때가 많아 이러한 경우는 그 빛깔을 회피하거나 이러한 내용을 그 빛깔로써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색채에 대한 연상 · 기호 · 편견 · 상징은, 첫째 색채 그 자체의 특성, 둘째 생물 또는 인간의 생리적 성질, 셋째 지역 · 환경 · 시대 · 문화 등과의 상관 관계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러한 것이 복합하여 어떤 의미를 띠게 되어 우리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인류학자나 민속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흰색 · 검정 · 빨강은 인류의 기본 색으로서 재앙과 악귀를 막는 주술 색(呪術色)으로 상징되어 왔다. 특히 빨강은 벽사 색(辟邪色)으로서 미개 민족 가운데에는 아직도 몸에 빨강을 칠하는 풍습이 있다. 또 흰색과 빨강은 백혈구 · 적혈구 등 생명 활동과 관련이 있는 내용을 상징한다. 그리고 검정은 이와 반대로 죽음이나 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이 빛깔은 단순한 시각과 색깔상의 차이로서가 아니고 인간의 심리 · 생리 · 감정 그리고 생물적인 체험을 포괄하는 원초적인 영역에 속한다. 색채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여러 시대를 통해서 통용되어 왔다. 이러한 색채의 상징성은 주로 사물의 형성과 관련된 것으로부터 연상 · 상징 · 수사적 추상(修辭的抽象)의 의미로 발전해 왔다.
예를 들면, 불[火]로서의 빨강은 물[水]로서의 파랑과 대비된다. 뜨거움으로서의 빨강은 서늘함으로서의 파랑에 대비된다. 전쟁으로서의 빨강은 평화로서의 흰색(항복)으로 대비된다. 그리고 여름으로서의 빨강은 겨울로서의 검정과 대비되어(朱夏玄冬) 어떤 의미를 상징하게 된다.
이와 같이 빛깔에 대한 상징성은 우리들의 빛깔에 대한 일상적인 경험이 고양(高揚)된 것이다. 그 상징적 의미를 지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그 뜻을 알 수 없는 지식화된 색채로서 통용되는 경우도 있다. 꼭 같은 노랑이 빨강 바탕 위에 놓여질 때는 빛나 보이는 노랑이 되지만 분홍색 바탕 위에 놓여질 때에는 퇴색한 노랑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 현상은 시각적인 변화이다. 하지만 여기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사랑(분홍색의 상징적 의미)이 지배하면 지성(노랑)은 무색해진다라는 상징적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하여 흰색은 순결 등을 상징하고, 검정은 죽음 · 절망, 빨강은 유혈 · 혁명 · 격렬함, 노랑은 혐오 · 불길함 · 지혜, 초록색은 안식 · 생명 · 희망, 파랑은 청춘 · 희망 · 지성 · 비애 · 우수, 보라색은 고귀 · 우아 · 권위 등으로 상징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색채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색채에 대한 직접적인 감각적 경험에서 어의적 의미(語意的意味)로 지식화되어 간접적으로 경험되기 때문에 우리들을 직접 감동시키지는 못한다. 우리들이 체험하는 색채는 일정불변의 색채(color constancy)가 아니라 지각장(知覺場)에 따라 각각 다른 성질의 색채를 경험한다. 그래서 색채의 상징성을 결정적인 언어 개념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색채의 기본적인 성질에 의해서 환기되는 상징적 의미를 전혀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오늘과 같은 시각 시대에 있어서는 색채의 특성이 우리들의 직접 체험을 통하여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를 탐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내의 색채, 의상의 색채, 기타 모든 생활 속의 색채, 심지어 오늘날의 예술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색채까지도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성이나 상징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색채 또는 배색이 직접 우리의 감각에 맞는가 그렇지 못한가의 차원에서의 색채와의 만남이 더 중요하다.
색채의 상징성은 색채의 심리적 특성과 결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빛깔이 담고 있는 의미나 상징성은 그것을 지적으로 알지 못하는 경우나 사람에게는 큰 의의를 부여하지 못한다. 색채와의 만남은 색채가 담고 있는 상징성과의 만남이 아니고 직접 감각적 체험으로서의 만남일 때 그 의의와 가치를 가지게 된다.
적어도 개항 전까지 한국 문화의 대부분은 화이적 세계관(華夷的世界觀)에 바탕을 둔 문화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의 색채 문화도 역시 이러한 바탕에서 형성되었고 오늘에 이르러서도 우리들의 색채 의식 가운데에는 이러한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일면이 있다.
음양오행적 우주관에 의하면 동서남북 및 중앙의 오방(五方)이 그 주된 골격을 이룬다. 그리고 각 방위에 해당하는 색은 청 · 백 · 적(赤) · 흑(黑) · 황으로서 양(陽)에 해당하며, 정색이라고 부른다. 동방과 서방의 사이에는 벽색(碧色), 동방과 중앙 사이에는 녹색(綠色), 남방과 서방의 사이에는 홍색, 남방과 북방의 사이에는 자색, 북방과 중앙 사이에는 유황색(騮黃色)을 이루어 이것은 음(陰)에 해당하고, 간색(間色)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오정색(五正色)과 오간색(五間色)은 한국 문화 속의 기본 색이다. 우리 선조들은 음양오행의 이치대로 색채를 생활에 활용하였다. 다섯 가지 정색과 다섯 가지 간색 이외의 색은 자연현상의 변화나 대상물의 색채를 기억할 수 있는 한자의 뜻글자로 표기하였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문헌 속에 기록된 색채어로써는 그 정확한 빛깔을 고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백전립(白戰笠)과 홍철릭[紅天翼]의 경우 전자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흰색이 아닌 물들이지 않은 그대로의 누런 흰색이다. 후자의 홍철릭의 홍색은 실제로 보면 거의 금적(金赤)에 가까운 색이다. 또 벽색이라고 할 때 막연히 하늘색과 비슷한 색으로 상상할 뿐 청색과 어느 정도 구별되는 푸른색인지 그 정도를 정확히 알기 힘들다. 같은 홍색이라도 홍상(紅裳)의 홍색과 홍천익의 홍색은 실제는 서로 다른 홍색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 문화 속에 나타난 빛깔은 다양하고 특이한 배색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 색채의 사용이 직접적인 감각 체험에 바탕을 둔 시각적 효과에 따른 특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관념화된 의미, 상징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예를 들면 사계의 변화를 청춘(靑春) · 주하(朱夏) · 백추(白秋) · 현동(玄冬)으로 관념화한 것도 오행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문화 속의 색채는 시각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관념적이고 상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문화에 나타난 공간 개념(空間槪念, 또는 空間知覺)도 오방위의 수평적 개념으로 파악하였다. 좌청룡(左靑龍) · 우백호(右白虎) · 북현무(北玄武) · 남주작(南朱雀)의 공간과 색채의 설정은 음양오행의 이치에 맞아야 생활이 길상(吉祥), 장수하고 국가가 번창한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례(五禮)의 의식도 모두 이와 같은 음양오행적 이치에 따랐다.
동방청색기(東方靑色旗) · 서방백색기 · 중앙황색기 · 남방적색기 · 북방흑색기로써 적을 공격할 때 대열의 공간을 형성하였다. 가례 때에도 역시 중앙에 황룡기(黃龍旗), 오른쪽에 백호기(白虎旗)와 현무기(玄武旗), 왼쪽에 청룡기(靑龍旗)와 주작기(朱雀旗) 그리고 홍문대기(紅門大旗)를 사용하였다.
한국 문화 속의 색채는 한국 문화가 자연에 순응한 것과 같이 자연에 대치한다는 개념보다는 동화한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색채의 사용도 전반적으로 약한 대비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음양의 중화(中和)라는 우리 나라의 사상과 관련이 있어 공간 지각의 개념으로 보면 극히 대립한다거나 입체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융화적이고 평면적이다.
백색과 흑색은 음(陰)에 해당하는 서방과 북방의 색으로서 흉례 때에 많이 사용된다. 길례 · 빈례 · 가례와 같은 의식(儀式) 때에는 적색과 청색과 같은 양(陽)에 해당하는 색이 주로 사용되었다. 악귀를 쫓거나 예방하는 의식에도 주로 적색과 청색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귀신 음양(鬼神陰陽)이라는 이치에서 음에는 양으로 대치함으로써 중화시킬 수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예로는 다음과 같다. 흉귀를 쫓는 조선시대의 계동나의(季冬儺儀)라는 의식에서는 동자(童子) 48인이 적색 의상을 입고 공인(工人) 20인이 적건(赤巾)과 적색 의상을 입는다. 임금이 위독하면 액정서에서 붉은 비단에 도끼를 그려 넣은 병풍인 보의(黼扆)를 설치한다. 오늘날까지 풍습으로 남아 있는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집 사방에 뿌린다. 사자(死者)의 관(棺)에 옻칠을 하고 안에 붉은 비단을 사방에 붙인다 등등.
따라서 만물이 무성하는 남방의 색인 적색(또는 朱色)과 해가 뜨는 동방의 색인 청색은 양색으로서 악귀를 쫓는 색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색을 벽사 색(辟邪色)이라고 부른다. 또한 적색과 청색은 연중 중요한 명절의 길흉사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청색 역시 벽사 색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출생 시 문전에 송죽(松竹)의 청지(靑枝)를 꽂으며, 금침의 잇색은 쪽색[藍色]이다. 그리고 사주포(四柱包)는 청과 홍색으로 하고 서낭당을 지날 때에 돌이나 청지를 꽂아야 길하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유채색은 화려 · 장엄 · 사치 · 권위의 상징으로서 권력층의 전유물이었다. 품계(品階)에 따라서 빛깔이 다른 의상을 입었으며 반상(班常)에 따라서도 빛깔을 달리하였다. 심지어 서민이 유채색 옷을 입으면 단죄(斷罪), 벌(罰)할 정도로 규제하였다.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대사(大事)라 하여 혼례 때에는 신랑 · 신부가 화려한 유채색 옷을 입은 이외에는 서민의 옷은 모두 흰색이었다.
양반도 공복(公服) 이외에는 채색 옷을 입지 못하였다. 오직 왕실에서만 진채(眞彩) · 화식(華飾)을 사용하였다. 그 외에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 예를 들면 무당과 기생 등은 신분을 나타내는 채색 옷을 입었다.
한국의 건축물에 반영된 색채 역시 왕궁이나 사찰과 같은 건물은 유채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일반 서민의 주택은 있는 그대로의 색, 즉 무채색이 주조를 이룬다. 이 경우의 빛깔은 자연 그대로의 색이어서 채색한다는 능동적 행위 개념보다는 건축 재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빛깔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벽이나 창은 창호지 · 닥지 · 회벽 등의 회백색조(灰白色調)이며, 벽에 걸린 옷도 흰색 · 회색 · 검정에 이르는 회색조로서, 심지어 문인화(文人畫)까지도 색채가 없다. 실내에 있는 백자, 부엌살림, 누런 회황색(灰黃色)의 장판, 흑갈색(黑褐色)의 문갑 · 장롱 등 또한 무채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옥외 풍경이나 건물 그 자체도 회색 돌담, 회청색 기와, 누런색 토담 등으로 강한 유채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하여 회색조의 빛깔은 자연의 사계 변화에 따른 풍경의 색채와 문자 그대로 잘 어울리는 취락 풍경을 이루는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한국의 건축물의 특징이 되어 자연의 색과 대비될 때에 강하게 튀어나오지 않는 동색 조화(同色調和)를 이루었다. 그래서 바라다볼 때에는 평온한 마음을 유발시키며 나아가 ‘모나지 않는’ 조화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 또한 음양오행적 사상의 무색 중화(無色中和)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궁궐이나 사찰 등과 같은 건축물의 색채는 있는 그대로의 빛깔이 아닌, 적극적으로 채색(彩色), 장식(裝飾)하였다. 일반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화려한 진채(眞彩)와 화식(華飾)을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건축물에도 상층 계급에서만 진채 · 화식을 사용하였다. 특히 신라시대에는 진골(眞骨)의 사가(私家) 이상의 건물에는 오채(五彩)를 베풀었다. 이러한 결과로 한국 건축의 특이한 성격을 나타내는 단청(丹靑)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건축에 나타난 가장 대표적인 색채 문화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단청(丹靑)이란 주로 목조 건물에 여러 가지 무늬로써 채색 장식(彩色裝飾)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단청은 고구려 고분벽화라고 생각되며, 신라시대에는 주택에도 오채로 장식하였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단청 장식이 호화롭고 그 채색이 힘차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당시의 건축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영주 부석사의 조사당(祖師堂), 안동 봉정사(鳳停寺)의 극락전 등이다.
고려시대의 단청은 녹색과 청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나 조선시대의 단청은 무늬의 구성이 아주 복잡하다. 뿐만 아니라 빛깔이 다채롭고 화려한 것이 특색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단청의 특색은 특히 건물의 내부와 외부에 따라 단청의 배색을 다르게 하였다는 점이다. 건물의 외부는 주로 붉은색을 많이 사용하였고 내부는 녹색과 청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빛을 많이 받는 외부에는 붉은색 계통을, 빛을 적게 받는 내부는 푸른색 계통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모두 선명하게 보이도록 한 놀랄 만한 색채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푸른색 계통의 빛깔은 光量이 적어도 선명하게 보이지만, 붉은색 계통의 빛깔은 광량이 많아야 선명하게 보인다. 이것을 光源의 黃色性, 또는 purkinje 현상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단청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단청으로서 적색 · 감색[洋靑] · 황색 · 녹색[洋綠] · 갈색[石間朱] 등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색과 흰색을 대비시켜 선명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창조해 내고 있다. 더욱 다양한 빛깔을 내기 위해서 양청(洋靑)에 백분(白粉)을 섞어 삼청(三靑)을, 양록(洋綠)에 백분을 섞어 옥색을, 갈색에 검정을 섞어 밤색[茶紫色]을, 주홍에 백분을 섞어 살색[肉色]을, 양록과 양청을 섞어 수박색[荷葉] 등을 만들었다.
흰옷은 한국인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가리켜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도 말한다. 그것은 공기(工技) · 농민 · 서민은 물들인 옷을 입지 못하게 한 한국 문화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1357년(공민왕 6) 사천소감 우필흥(于必興)은 복색(服色)을 오행에 맞도록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1406년(태종 6) 황해도 관찰사 신호(申浩)가 상언하기를 무색옷은 좀먹기 쉽고, 또 만들기 어려우므로 백색을 청색(우리 나라는 東方이며, 東方은 오행으로 볼 때 靑色이므로)으로 하자는 등 탈백색(脫白色)의 노력도 기록에는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모두 무색 천[白紵]으로 된 옷을 입었다.
한편, 관복(冠服) · 왕복(王服) · 영관복(令官服) · 국상복(國相服) · 근시복(近侍服) · 종관복(從官服) · 경림복(卿臨服) · 한관복(閒官服) · 서관복(庶官服)과 같은 공복(公服)은 그 품계 및 계급별로 색채를 사용하였다. 높은 계급일수록 적색 · 자색이 많고 낮은 계급일수록 청색 · 황색 · 백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시대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자색(紫色) · 비색(緋色) · 청색 · 황색 등이 공복 색(公服色)의 주조를 이루었다.
남자의 통상 예복인 도포는 밝은 옥색이며, 관례 때 관자(冠者)는 청포(靑袍)를 입었다. 신부의 혼례 예복은 녹의홍상(綠衣紅裳, 또는 紅色 저고리 · 藍色 치마)을 입었다. 그리고 문무관이 종묘 제례 때 입는 흑단령(黑團領)은 검은색이다. 또한 상례 때에는 백도포(白道袍) · 소복(素服) · 소혜(素鞋)를 신는다.
신부가 신랑집에 들어갈 때 머리에서부터 온 몸을 덮는 면사포(面紗布)는 홍사(紅紗)로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무관의 예복인 동다리옷은 전체가 주홍색이고 소매 부분만 적색(赤色)이다. 무당이 입는 원삼(圓衫)은 색동저고리에 청색 치마이다. 신생아는 목욕 뒤 백색 옷을 입히고 과장(科場)에 입장할 때 청포에 유건(儒巾)을 쓴다.
이와 같이 오례 및 일반 서민의 관혼상제 및 기타 여러 가지 의식에 따라 각각 다른 의상과 다른 색채의 옷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용품까지도 이러한 이치에 따름으로써 다양한 색채,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 문화를 이루었다.
금채색적(禁彩色的), 백색 · 청색 지향성 한국 문화 속에 반영된 색채의 특성은 색채를 직접 감각적인 감정이나 미적 감수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음양오행적인 우주관에 근거하는 의미 또는 상징적 관념을 더 중요하게 의식하고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는 데 있다.
소복을 입는 의미, 혼인 때 청단 · 홍단을 동심결하는 의미, 주칠(朱漆)하는 의미 등 모든 생활에 의미와 상징적 관념이 많았다. 그래서 때로는 의미의 과잉이 형식주의를 낳고 의견대립으로까지 비화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의미와 상징을 감정이나 감각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우리의 정신세계와 생활양식을 지배하였던 유교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체로 우리의 사상이란 인간적인 감각과 감정(관능적인 차원)을 멀리하고 인격과 형식, 규범(정신적 차원)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사상 체계였다. 그래서 색은 욕정(欲情 : 五彩는 五欲으로 상징된다) 등으로 동일시하여 가까이하지 않았다. 백색을 숭상하였던 백의민족이라는 의식의 일면에는 이와 같이 금욕적 인격 완성에 이르는 한국인 특유의 탈감각적(脫感覺的) 인생관이 엿보인다.
오늘날 우리의 색채 의식도 다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 특히 지식인일수록 한결같이 원색 · 유채색 등을 유치한 것으로 인식하는 이면에는 이러한 의식의 일면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인의 옷 하면 흰색을 연상하듯이 한국의 색채 하면 흰색과 청색을 연상한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색채어(色彩語) 가운데에서도 가장 집약적으로 잘 쓰이는 것이 백색과 청색이다. 백자(白磁) · 백학(白鶴) · 백미(白眉) · 청자(靑磁) · 청송녹죽(靑松綠竹) 등이 그러하다.
고매한 인격 · 인품 · 정절(貞節)의 정신세계로 지향하려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학처럼 산다’라는 학의 아날로지(analogy, 類同代理物)로서의 백색에 대한 강한 기호 반응(嗜好反應)을 나타낸다. 그리고 숭고하고 고귀하며 고절(高絶) · 선(善)에의 지향은 항상 푸름을 가지는 송죽(松竹)의 아날로지로서 청색에 대한 강한 기호 반응을 나타낸다. 사실 고려청자의 시각적 빛깔은 비색(緋色)이지만 그 독특한 빛깔, 품위, 뛰어남의 의미가 상징되는 푸름의 청자인 것이다.
한국인은 자기 감정을 즉각적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점잖지 못한 것으로 의식화되어 있다. 그리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하는 것(彩色한다는 행위 개념)은 점잖고 인격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한국 문화 속에 반영된 대부분의 색채와 색채의 생활화는 희로애락 · 감정 · 감각 · 욕망 등을 색채에 직접 감정 이입(感情移入)하거나 감정 투사(感情投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떤 의미와 결부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여 간접적으로 은근히 표현하였다고 생각된다.
태어나서 흰옷을 입고 평생을 흰옷을 입고 살다가 죽어서 흰옷(수의)을 입고 자연에 돌아간다. 이때의 흰옷이란 있는 그대로의 색(無色, 素), 즉 색깔이 없는 상태로서 탈색채(脫色彩) · 금채색(禁彩色)의 인생관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하여 한국의 문화에 나타난 색채는 금채색 사상을 바탕으로 백색과 청색에 지향하려는 색채의 상징적 의미와의 만남과 그 생활화가 커다란 특성으로 부각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문화 속에 나타난 색채의 특성을 시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떤 경우에서나 백색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배색(配色)으로서 독특한 미적 특성을 나타낸다. 의상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색채 가운데에서 동정의 무늬 등을 백색으로 한다. 건물에 있어서도 추녀, 지붕 위의 용마루에 흰색 횟가루로써 이음대를 붙인다. 담장 그리고 단청의 색깔 사이에 흰색 띠를 적절히 사용한다 등이 그렇다.
또한 나전칠기 공예품의 흰빛 나는 자개 무늬, 금속 공예품의 은입사(銀入絲), 장롱의 백동 장식(白銅裝飾), 분청사기의 무늬 등은 다른 색깔들과 대비되어 화려하고 생동적인 시각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많다. 백색도 여러 가지 색 가운데에서 적절히 배색되면 눈에 잘 뜨일 뿐만 아니라 선명한 색깔과 같이 있으면 생동하는 율동감을 준다. 이러한 생동감과 율동감은 시각적으로 신선한 아름다움을 주어 우리를 감동시키는 미적 특성으로서, 한국 문화에 나타난 색채의 상징적 특성에 못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