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폐사가 되어 그 사적지만 전하여온다. 이 절은 6세기 중엽 왕인(王仁)의 후예라고 칭하는 가와치노후미우씨[西文氏]의 일족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사전(寺傳)에 의하면, 이 절은 긴메이조[欽明朝, 539∼571]에 서수아사고(書首阿斯高)와 그의 아들 서수지미고(書首支彌高)가 발원하여 이에 동조한 서수전단고(書首栴檀高)와 토사연장형고(土師連長兄高), 그리고 서수양고(書首羊古)와 서수한회고(書首韓會古)라는 네 사람이 공동으로 당사를 건립하였고, 또 659년 정월 금동의 아미타불을 만들어 안치하였다.
그리고 743년에 있었던 당우(堂宇)로는 금당(金堂)·보탑(寶塔)·강당(講堂)·보랑(步廊)·종대(鐘臺)·와즙쌍창(瓦葺雙倉)·식당(食堂)·동승방(東僧坊)·서승방(西僧坊)이 있었다. 이 사찰을 건립한 백제계통의 가와치노후미우씨는 일본 조정에 있어서 주로 문필관계의 직무에 종사하였던 씨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