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치수(穉秀), 호는 죽파(竹坡). 관찰사 서명구(徐命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서효수(徐孝修)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서유방(徐有防)이며, 어머니는 송재희(宋載禧)의 딸이다. 서유린(徐有隣)에게 입양되었다.
1790년(정조 14) 진사시에 장원하였고, 1794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병조좌랑·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무안현감(務安縣監)·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성천부사(成川府使)·이조참의 등을 거쳐 1819년(순조 19) 대사간이 되었다.
그 뒤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를 지내고 1823년 진하부사(進賀副使)가 되어 정사 박종훈(朴宗薰)과 더불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이조참판·충청도관찰사를 지내고 1828년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1830년 병조판서를 지내고 1831년 동지정사(冬至正使)가 되어 다시 청나라를 다녀왔다.
그 뒤 좌빈객(左賓客)·홍문관제학·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수원부유수(水原府留守)·이조·공조·형조의 판서 등을 지내고 1854년(철종 5) 회방(回榜: 대과급제 60주년)을 맞아 철종으로부터 궤장(几杖)과 이등악(二等樂)을 하사받았고 지사(知事)에서 판부사(判府事)로 특별 가자되어 기로소에 들어갔다. 글씨에 조예가 있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