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읍마을 (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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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읍마을
제주 성읍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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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민속마을. 국가민속문화재.
내용 요약

제주 성읍마을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민속마을이다. 1984년에 마을 전체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제주도 동남쪽 중산간 지대에 자리한다. 성곽의 크기는 객사 대문을 중심으로 지름이 대략 250보이다. 이곳은 1423년(세종 5)에 현청이 설치된 이후 조선말까지 정의현 소재지였다. 마을에는 성곽, 동헌, 향교가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 형국은 크게 보면 방어에 유리한 장군대좌형이다. 작게 보면 사람과 재화가 풍부하게 모이는 행주형이다. 이 마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읍성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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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민속마을. 국가민속문화재.
내용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마을은 제주도 동남쪽 중산간 지대에 자리하며, 해안에서 9㎞ 거리, 해발 125m의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1423년(세종 5)에 현청(縣廳)이 설치된 이후 조선말까지 약 5세기 동안 정의현(旌義縣) 소재지로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읍성 가운데 하나이다. 마을에는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는 성곽과 동헌이었던 일관헌(日觀軒) 및 명륜당·대성전을 포함한 향교가 있다.

기타 건물로서 객사(客舍)·향청(鄕廳)·무학청(武學廳)·진무청(鎭撫廳)·가솔청(假率廳)·작청(作廳)·현사(縣司)·사창(司倉)·서별창(西別倉)·군기고(軍器庫)·대동고(大同庫)·평역고(平役庫)·형옥(刑獄)·남성루(南城樓)·의두정(倚斗亭)·한동루(漢東樓)·남대문·동서대문 등의 건축물이 있었다.

이 건물들은 대개 그 위치 정도만 알려져 있으며, 그 규모는 전해지지 않은 것이 많다. 그러나 현존하는 향교 건물을 볼 때 제주도 특유의 평면 구성과 구조 기법을 지녔으리라 추측된다.

이 고을의 풍수지리적 해석은 다음과 같다. 제주도의 영봉인 한라산을 조산(祖山)으로 삼고 고을 북쪽의 수려한 영주산을 진산(鎭山)으로, 남쪽 들판 가운데 남산봉을 안산(案山)으로 삼는다. 형국(形局) 안에는 천미천(川尾川)이 반달꼴로 흐르고 그 반달의 안쪽에 읍성이 있으며, 남산봉 남쪽으로 수구(水口)가 열린다.

고을의 형국은 크게 보면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이고, 작게 보면 행주형(行舟形)이 된다. 장군대좌형이란 장군이 마주 앉아 있는 형상이라는 뜻으로서 앞뒤 좌우 대칭형 지세를 말하며, 방어에 대단히 유리한 분지임을 의미한다.

행주형은 우리나라 고을의 터에 주로 쓰이는 지세로서 사람과 물자를 가득 싣고 막 떠나려고 묶어둔 배란 의미이다. 이런 형의 땅에는 사람과 재화가 풍부하게 모인다고 믿는다.

이곳에는 배에서 가장 중요한 키나 돛대, 닻을 갖추어야 길하다고 생각하며, 이곳에 우물을 팠을 때는 배 밑바닥에 구멍이 난 것과 같이 흉하다고 믿는다. 이 마을의 닻은 남산봉에 해당하고 돛대는 마을의 큰 나무가 그 구실을 한다고 전한다. 또한, 같은 이유로 마을 안에는 일체의 우물을 파지 않았다.

고을은 분지의 가운데에 자리잡았는데 지세가 약간 도드라진 듯한 곳에 위치한다. 성곽의 크기는 객사 대문을 중심으로 지름이 대략 250보(步)이며, 성곽은 가로 60첩(堞), 세로 50첩으로 계획되었다고 한다.

고을 중심점인 객사 대문에서 남북으로 선을 그으면 북쪽 성벽의 의두정과 남대문 위를 지나며, 동서로 그으면 서대문과 동대문을 지난다. 동헌은 북쪽 중심인 의두정에서 서쪽으로 15°를 튼 축선(軸線) 위에 위치한다.

이 축선은 고을의 남쪽 능선인 갑선이오름과 아심선이 사이 처진 곳을 향하는 바, 그 사이로 저 멀리 남쪽의 표선리에 있는 매봉이 등성이 너머로 엿보인다.

이것을 규봉(窺峯)이라 하여 풍수에서는 대단히 흉하게 여긴다. 이것이 보이지 않도록 등성이에는 커다란 성곽 모양의 규봉막이를 하고 남문 앞에는 액막이인 거북대를 만들어두었다고 한다.

도로의 모양은 성곽 밖의 경우 평지 마을에서 자주 쓰이는 둥근고리꼴 길을 만들고 성곽 안에는 고을에서 보통 쓰는 ‘우’자꼴 길을 기본으로 삼는다. ‘우’자의 ㅇ에는 고을에서 가장 중요한 관아를 두고 ㅡ는 동서길이 되며 ㅣ는 남문로에 해당한다.

이것을 근간으로 활꼴길과 막힌 도로를 배치해서 고을의 도로망을 구성하고 마을 전체에 고르게 집들을 배치한다. 길들은 모두 활처럼 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은 『산림경제』 복거조(卜居條)의 “똑바로 오는 길은 충파(衝破)라 일러서 좋지 않으니 반드시 구부리고 굴려야 한다.”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임장소는 대개 길들이 만나는 곳에 마련되며, 여기에는 큰 나무가 있고 걸터앉을 수 있는 평상이 마련된다. 여기에서 이름난 곳은 동헌 앞의 공문동산·벌원방죽·동문 앞·노다리방죽 등이다.

민가 입구의 처리는 길에 면한 경우, 짧은 올래(큰 길에서 집 대문에 이르는 막다른 골목)를 두고 대문간을 시설한다. 길 안쪽에 있는 집들은 긴 올래를 쓰고 대문간을 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짧은 올래는 집들이 밀접해 있는 도시형 주거에 많이 이용되고, 긴 올래는 농촌에 많이 보이는데 이곳은 짧은 올래를 가진 집이 비교적 많은 도시형 마을이다. 민가는 기록에 의하면 1826년(순조 26) 성 안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80여 동이 불탔다고 전하고, 1948년 4·3사건 때에는 서문 밖 민가가 거의 불타버렸다고 전한다.

따라서 오래된 주택이 없을 듯싶지만 실지 19세기초의 건물을 중심으로 그 이전의 건물도 꽤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독특한 구조기술로 말미암아 육지와는 다른 건축기술을 발견할 수 있다. 평면은 一자 겹집이며, 안거리와 밖거리 2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배치방식은 二자 모양과 모로 앉은 모양 두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가 더욱 우세하다. 안거리의 방위는 정남쪽이 월등하게 많으며, 다음은 동남쪽과 그 사이가 차지한다.

마을에는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가옥 5채가 있다. 제주 성읍마을 객주집, 제주 성읍마을 고평오 고택, 제주 성읍마을 고창환 고택, 제주 성읍마을 한봉일 고택, 제주 성읍마을 대장간집은 모두 1979년에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마을 한복판에 있다. 기타 지방문화재로는 정의향교·일관헌·녹나무·돌하루방·초가 등이 지정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 마을은 유형·무형의 문화재와 고유한 생활풍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1984년 6월 12일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그 후 국가민속문화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민간신앙도 다양하여 안할망당·산신당·상궁알당 등 무속신앙처가 아직 남아 있고, 동제인 포제(酺祭)를 치를 때 목동신을 더불어 모시는 것도 특이하다. 걸궁도 근래까지 전승되었으며, 특이한 민요도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민속촌지정대상지역조사보고서』(김홍식, 제주도, 1978)
『정의고을』(김영돈, 문화재관리국,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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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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