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자신(子愼), 호는 석곡(石谷). 아버지는 송시흥(宋時興)이다.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다. 어려서는 서기(徐起)에게서 배웠다.
1660년(헌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곧 송시열이 있는 회덕으로 내려가 학문 연구에 전력하였다. 1674년 효종비인 인선대비(仁宣大妃)가 죽자 모후 조대비(趙大妃)의 복제 문제로 송시열이 덕원으로 유배되자 송시열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를 올렸다.
이로 인하여 당시 영의정이던 허적(許積)의 탄핵을 받고 궁궐 앞에서 장살되었다. 이듬 해인 1680년 경신출척으로 공조좌랑에 추증되었다. 대전의 정절서원(靖節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석곡봉서(石谷封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