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의 10세손 김영조(金永祚)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재기(鄭在箕)·민치량(閔致亮)·김영조 등의 서문, 권말에 권익붕(權翼鵬)·정태현(鄭泰鉉) 등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5권 1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시 47수, 권2에 묘지명 1편, 잡저 2편, 권3에 세계도, 권4에 연보, 권5에 부록으로 만장·행장·묘지명·묘갈명·찬 등이 있다.
시는 장시가 없고 주로 절구형이다. 그 가운데 「배덕계선생유환아정(陪德溪先生遊換鵝亭)」에서는 오직 덕(德)을 벗으로 삼아 살아가는 속에서 맑음(淸)의 의미를 찾고 있으며, 그 아래에 오건(吳健)의 원운(原韻)을 덧붙였다. 「유백운동(遊白雲洞)」에서는 백운동의 풍경 속에서 역시 맑음(淑)의 의미를 찾았다.
「진덕치 進德峙」에서는 의(義)의 길을 통해 인(仁)의 문으로 들어가는 일은 극기로써 가능한데, 자신은 백 척의 장대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다만 이 시만 짓고 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며 자신의 수행을 반성하였다. 「증만보암승(贈萬寶菴僧)」에서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불교에 휩쓸리는 일이 종종 있으니 헛되이 적멸 속에 빠뜨리는 참선이나 염불을 그만두라고 하며 불교를 비판하였다.
「제벽상시(題壁上詩)」는 고대의 성인을 지극히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학문을 권한 시이다. 「송자부진성(送子赴晋城)」은 임진왜란 때 아들을 의병으로 나가 싸우게 하며 지은 시로, 충효가 불변의 덕목이며 목숨 바쳐 지켜야 함을 강조하였다. 「장계무림(長溪茂林)」·「서평농가(鼠坪農歌)」·「월현청풍(月峴淸風)」등 10수는 은거할 때 지은 작품으로 스스로 ‘재거잡영(齋居雜詠)’이라 주를 붙였으며, 은거처의 사시 풍물과 농민들의 경작 생활 등을 그렸다.
「근차남명조선생덕산복거운(謹次南冥曺先生德山卜居韻)」에서는 조식(曺植)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면서, 흘러가는 시냇물은 아무리 마셔도 다하지 않는다고 하여 자신의 은거하는 재미와 가치를 비유하였다. 잡저 가운데 「강규(講規)」는 강장(講長)과 유사(有司)가 제생을 지도하는 절차와 그 규칙 5조를 설명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