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집·필사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 목차가 없고 권수도 붙여지지 않았으나, 5권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 장서각 도서와 규장각 도서에 있다.
제1책에 책(策) 2편, 기(記) 1편, 서(序) 2편, 설(說) 1편, 해(解) 1편, 후서(後敍) 1편, 행장 2편, 제문 8편, 잡저 11편, 제2책에 시 403수, 제3책은 만년유고에 시 129수, 서발(序跋) 6편, 제문 4편, 묘갈문 3편, 유사 1편, 통문 1편, 애사 2편, 잡저 4편과 만년별고에 시 79수, 소(疏) 1편, 기타 잡문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수차책(水車策)」은 농업 정책에 있어서 수리 사업의 긴요함과 수리 사업에서의 수차의 중요성·효용성을 주장한 글로, 이 안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부록으로 실어 이론을 보충하였다. 「중방원시집서(衆芳園詩集序)」는 조원경(趙遠慶)·권유(權裕)·안광렬(安光烈) 등 9인의 시집에 붙인 서문이다.
「남령전후서(南靈傳後敍)」는 이원경(李元卿)이 지은 기인 남령(南靈)의 전에 붙인 후서인데, 남령은 중국·일본·조선 등지로 다니면서 기행을 부렸으며 임진왜란을 예언하기도 했다고 한다. 「상이장별지(上李丈別紙)」·「답이장별지(答李丈別紙)」 등은 『대학』의 명덕(明德)에 관해 자세한 의견을 진술한 것이다.
「책제(策題)」에서는 학(學)의 의미에 대해 여러 용례에 따라 자세히 논술하였다. 만사로는 「영종대왕만(英宗大王挽)」·「문효세자만(文孝世子挽)」·「정종대왕만사(正宗大王挽詞)」 등이 있는데, 「정종대왕만사」는 39수나 되는 장편이다.
「과시백선서(科詩百選序)」에서는 먼저 조선 초기에는 시가 올바름을 보였는데 중기 이후에 화려함에 빠졌다고 비판하고, 과시를 고시·행시(行詩)·배율의 3체로 모아 시교를 부흥시키고자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울릉기(鬱陵記)」는 지형과 산물·생활상 등 울릉도에 관한 종합적인 사항을 기록한 글로, 서문에서 울릉도와 관련된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인조 때에 일본 사신이 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의 구절까지 인용하며 일본의 영토이니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하여 반박하고 그냥 되돌려 보낸 일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과폐소(科弊疏)」는 과거의 실정과 그 폐단을 지적하고, 대응책으로서 먼저 학교를 일으켜 인재를 배양하고 다음에 공원(貢院)을 세워 공정히 선발할 계책을 각각 열 가지씩 나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