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金大鉉, ?~1870)의 자호(自號)는 월창(月窓)이며, 출생 연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대현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에 통달하였는데, 40세 이후 『능엄경』을 읽고 나서는 불교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많은 책을 지었으나 1870년 임종하기 전에 자신이 쓴 모든 저서를 불태우고 『자학정전(字學正典)』 일부와 『술몽쇄언(述夢瑣言)』 100장만을 남겼다. 현재는 『술몽쇄언』과 『선학입문(禪學入門)』만 전하고 있다.
1책으로 된 『술몽쇄언』은 본문 구성이 87장(章)으로 된 것과 100장으로 된 것 두 계통이 전해진다. 1884년(고종 21)에 김대현의 아들 김제도(金濟道)가 부친의 문하생이었던 유운(劉雲)의 발문(跋文)을 받아 취진자(聚珍字)의 활자본으로 간행한 판본은 87장본이다. 이 87장본의 활자본과 이를 전사(傳寫)한 필사본이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능화가 편집 겸 발행을 담당했던 『조선진흥회월보』와 『조선불교계』에 실린 노하산인(蘆下散人)이 번역한 『술몽쇄언』은 이 87장본에 한글로 토[諺吐]를 단 것이다.
반면 ‘함풍정사동월서(咸豐丁巳冬月書)’가 기록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필사본과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1908년 가야강당(伽倻講堂) 필사본은 100장본의 『술몽쇄언』이다. 1918년 신문관에서 발행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중 「백장몽언불교정신(百章夢言佛敎精神)」에 이 100장본이 소개되어 있다. 100장본에는 화공(畵工), 영향(影響), 탄척(坦戚), 발분(發憤), 일심(一心), 세의(世疑), 방하(放下), 수성(水性), 경조(鏡照), 상공(相空), 각의(覺義), 술지(述旨), 풍유(諷諭) 등 13장의 내용이 더 수록되어 있다.
『술몽쇄언』의 정신과 골자는 모두 불교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나 책의 전편에서 단 한 자의 ‘불(佛)’자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 책의 자서(自序)에는 “하루는 술에 취하여 창 아래에 쓰러져 누웠다가 그대로 한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서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듣는 이가 어리둥절해 하였다. 이에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 본 바를 적어 『술몽쇄언』이라 이름 붙였다. 그 말이 자질구레하고 좀스러워 꿈 깬 사람을 대하여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뜻이다”라고 적고 있다.
김대현은 사람들의 마음을 구제하려는 의도로 불교를 기본으로 유교와 도교 사상을 가미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 『술몽쇄언』은 첫머리의 자서와 권말의 문하생 유운이 쓴 발문을 제외하면 지상(知常) · 망환(妄幻) · 수요(壽夭) 등의 소제목을 붙여 인생의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먼저 꿈 속에서 일어난 일체의 상황도 사물도 행위도 깨고 나면 한낱 환상일 뿐이며, 꿈은 참[眞]이 아님을 밝힌다. 이어서 변하고 바뀌고 사라지는 것은 참이 아니며, 참이 아닌 것이 허상이나 꿈이라면, 변하고 바뀌고 사라지고 하는 인생도 곧 환상이요 꿈에 불과하다. 인생은 변하고 바뀌는 연속이며, 사람이면 누구나 예외가 없다. 결국 자고 깨는 것은 작은 꿈이요, 나고 죽는 꿈은 큰 꿈일 뿐이며, 사람이 장수를 한다는 것은 긴 꿈이요, 요절한다는 것은 짧은 꿈일 뿐이라고 보았다. 또한 어떤 때에는 아주 긴 세월의 꿈을 꾸고, 어떤 때에는 아주 짧은 순간의 꿈을 꾸지만, 깨고 나면 그 긴 세월과 짧은 순간도 다 환각일 뿐임을 알게 되듯이, 인생 또한 꿈에서 깨고 나면 장수도 요절도 그와 같은 환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을 누리는 꿈, 빈천하고 불행하고 슬픈 꿈을 꾸지만, 꿈을 깨면 모든 것이 환상인 줄 알고 웃듯이 인생에서 모든 영고성쇠(榮枯盛衰)와 희로애증(喜怒愛憎)이 결국은 인생이란 이름의 꿈을 깨는 순간 모두가 다 허상이 됨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무엇에 대하여 악착스레 다투고 집착할 필요도 없고, 부귀하다고 교만할 것도 빈천하다고 실망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김대현은 몽각(夢覺)을 초월하고 생사를 초월한 항구불변(恒久不變)의 존재인 ‘참’이 엄존(儼存)한다는 것을 꿈을 통하여 설명하였다. 그 항구불변의 참이 어떤 것인가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이 책의 정념(正念) 부분에서, “정념에 도달하면 견성(見性)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결국 그는 이 책을 통해 물거품 같고 환상에 불과한 속세에서 물욕의 노예가 되지 말고 희로애증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 도를 닦고 수양을 쌓아 정념의 경지에 이르고 견성의 경지에 도달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술몽쇄언』의 본문 중 불이(不二), 업명(業名), 관심(觀心), 인연(因緣), 적조(寂照), 전도(顚倒), 무아(無我), 무념(無念), 정진(精進), 진여(眞如), 정념(正念) 등은 모두 난해한 불교 용어인데, 꿈을 통하여 이를 쉽게 풀이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술몽쇄언』은 시비(是非) · 선악(善惡)을 인생의 테두리 안에서 따지지 않고 높은 위치에서 굽어보며 인생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에게 흔한 꿈을 그 예로 채택하였다. 저자 김대현은 부귀와 영화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부정과 악덕을 감행하는 일부 세상 사람들의 태도는 어리석은 것이며, 사랑과 미움과 분노와 기쁨에 연연하는 태도는 우스운 것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꿈의 실체, 인생과 꿈의 관계, 불교와 꿈, 꿈을 통한 해탈 등을 설명하는 훌륭한 불교 지침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