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9년 신말주(申末舟, 1439∼?) 작. 화첩. 종이에 수묵. 1992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신길수 소장.
신말주는 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정자(權知正字)가 되었다. 세조 때에는 형 신숙주(申叔舟)가 단종 폐위에 가담함에 따라 벼슬을 사양하고, 순창에 내려와 귀래정을 짓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말년에 귀래정에서 70세가 넘는 노인인 이윤철(李允哲) · 안정(安正) · 김박(金博) · 한승유(韓承愈) · 설산옥(薛山玉) · 설존의(薛存義) · 오유경(吳惟敬) · 조윤옥(趙潤屋) · 장조평(張肇平)의 9인과 더불어 십노계(十老契)라는 계회를 가졌다.
계원 10명이 각기 한 첩씩 계첩을 제작하여 갖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이 한 첩만이 남아 있고 첩이 아닌 축으로 제작한 것으로는 장성 김걸(金傑)의 소장본이 전한다.
한 장에 한 인물의 배치하고 기물이나 배경은 소나무 · 시녀 · 바위 등 최소한으로 제한하였다. 화면 상단에는 각 인물의 생활 · 인격 · 사상 등을 읊은 4행의 시를 적었다. 산수화 위주에 계회 장면을 점경 인물(點景人物)로 작게 표현한 16세기 궁중의 계회도와 달리 인물 위주로 표현한 점이 주목된다. 대부분 방석 위에 앉아 있는데,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술을 이기지 못하고 드러누운 경우도 있다.
인물의 표현을 보면 곡선 위주로 둥글게 묘사하였고, 붓의 첫머리에 약한 정두(頂頭)를 세웠다. 계회도로는 제작 시기가 이른 것에 속하고 궁중의 공식적인 모임인 계회도가 아닌 문인들의 사적인 계회를 그린 기록화라는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있다. 1790년에 김홍도(金弘道)가 이 화첩을 다시 모사한 「십노도상도(十老圖像圖)」가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