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자방(子方). 호는 만퇴헌(晩退軒).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신벌(申橃)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윤의형(尹義衡)의 딸이다. 성혼(成渾)·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0년(선조 13) 천거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1582년에 사마시에 합격, 학문에만 정진하다가 천거로 장원(掌苑)이 되었다. 1588년 직산현감(稷山縣監)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가 그 뒤 임실·함열 등의 현감을 잠시 지낸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
1597년 어머니를 여의고 3년상을 마친 뒤 다시 관계에 들어가 형조정랑·한성부서윤·이천부사 등을 역임하였는데, 1602년 무고를 당하자 사직하였다가 다시 충주목사·삭녕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610년(광해군 2) 공조참의가 되었고 그 뒤 양주목사를 역임하고, 1613년 이이첨(李爾瞻) 등이 폐모론을 주장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충청도 남포(藍浦)로 낙향하였다.
그 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인조반정 후에 형조참의·동부승지·좌부승지 등을 거쳐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춘천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만퇴집(晩退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