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균 ()

근대사
인물
조선후기 민승호폭사사건, 흥인군집 방화사건 당시의 관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관련 사건
민승호폭사사건|흥인군집 방화사건
목차
정의
조선후기 민승호폭사사건, 흥인군집 방화사건 당시의 관리.
생애 및 할동사항

1870년대는 민비 척족세력과 대원군파 사이에 반목과 대립이 심각하였다. 1873년(고종 10) 12월 경복궁 자경전(慈慶殿) 화재사건, 이듬해 11월 민승호(閔升鎬) 일가족폭사사건, 1875년 11월 영의정 흥인군 이최응(李最應)집 방화사건, 그리고 대원군의 심복인 안동준(安東晙)의 처형사건 등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러던 차에 1876년 2월 경상우병사를 지낸 신철균은 화적연루자로 체포되었는데 민승호폭사사건과 흥인군집 방화사건까지 모두 뒤집어쓰고 참형당하였다. 일설에는 신철균이 대원군의 직계인물이었다고 하여 사건의 장본인이라고도 전하나, 『대동기년(大東紀年)』에는 무고임을 밝히고 있고, 또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도 엄형과 국문에 못이겨 거짓 자백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한국사―최근세편―』 (이선근, 진단학회, 1961)
집필자
이종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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