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403㎝, 가로 275㎝. 1688년(숙종 14)에 제작되었다. 팔상전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는 이 불화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하지만, 화면을 압도하는 중앙의 본존불과 비교적 굵직하게 묘사된 협시보살상들 때문에 협시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즉, 4천왕·4보살·6제자·4분신불(分身佛)과 타방불(他方佛)·4구의 팔부중(八部衆)·이청문중(二聽聞衆) 등이 본존불 좌우에 2열 종대로 배치되어 비교적 단순한 구도를 보여준다.
화면의 중앙에서 상단부에 걸쳐 꽉 차게 묘사된 본존불은 건장하고 풍만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는 원만상(圓滿相)으로, 조선 후기 불화로는 드물게 보이는 특징이다. 육계(肉髻)는 뾰족하고 계주(髻珠)는 큼직한 것으로 청주 보살사 괘불(掛佛, 1649년)이나 화엄사 괘불(1653년)의 본존불과 흡사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한 데다 눈·코·귀·입 등이 작고 부드러워 원만상을 이루고 있다.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벗은 상체 역시 둥근 곡선으로 처리되어 풍만함을 자랑하고 있으며, 당당한 체구의 형태가 잘 묘사되어 있다.
본존불의 풍만한 형태는 보살이나 기타 협시상들에서도 그대로 표현되어 전체 불보살들이 환하고 원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색채는 이러한 형태에 알맞게 밝으면서도 부드러운 중간 색조를 사용하였으며, 본존의 옷깃이나 옷무늬 등 역시 17세기 중엽경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어서 17세기 후반기의 불화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