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삼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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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삼존도
아미타삼존도
회화
작품
고려시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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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의 불화.
내용

1330년(충숙왕 17)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19.4㎝, 가로 64.2㎝. 일본 호인사(法恩寺) 소장. 상부에 아미타불이 배치되고 하단 무릎 밑 좌우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앉아 있다. 그 위로는 두 제자가 배치되어 있어 오존도(五尊圖)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미타불과 보살만을 들어 삼존도라 한다.

구도는 예배존상화에서 보편적으로 표현되는 2단 구도 형식이다. 서로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는 점이나 좌우 제자상의 모습 등으로 보아 설법상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 점은 두 손을 가슴에 들어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게 하고 왼손은 반듯하게 하여 아미타설법인을 취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아미타불의 얼굴은 1320년 작 아미타구존도(일본 松尾寺 소장)의 얼굴과 비슷하다. 둥글면서도 눈·코·입·귀 등을 단정하게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근엄한 인상을 풍겨 주고 있다. 신체는 안정되고 단정한 형태로서 역시 1320년 작 아미타구존도 불상과 비슷한 형태이다. 그러나 불의(佛衣)는 이와는 달리 차라리 1306년 작인 아미타불화(일본 네즈미술관 소장)의 옷주름과 같이 정연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왼쪽의 협시보살(관음)은 풍만한 얼굴, 부리부리한 눈, 큼직한 코, 당당한 체구와 함께 화려한 장신구 등으로 당시 귀족의 모습을 연상시켜 준다. 1320년 아미타구존도의 보살 모습과 흡사하다. 이 보살은 왼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보관에 화불을 표현한 점으로 보아 관음보살이 거의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당시 관음보살입상의 통식인 보병(寶甁)을 든 인상(印相)과는 다르다.

오른쪽 보살은 왼쪽 보살과 형태나 장신구, 자세 등이 흡사하다. 단지 오른손에 경권함(經卷函)을 들고 있다. 이는 1320년 아미타구존도나 1307년 노영(魯英)이 그린 아미타구존도 등, 고려 불화의 대세지보살 지물(持物)의 일반적 형태를 따르고 있다. 그러므로 대세지보살로 생각된다.

이 그림은 본존불의 옷에 과도하게 묘사된 꽃무늬나 법륜, 卍자 등은 물론, 보살의 화려한 치레에 채색된 찬란한 금색, 붉은 색의 옷, 부드러운 하늘색 등의 조화로 호화찬란함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 왕실 귀족의 화려한 풍모를 시사하는 듯하다. 하단에는, “香徒等 金思達 松連 草急 古火也 閑守 助達 金呂 所閑 金二 金甫 仁界 水口 尹自 戒怛 萬眞 戒□ 正延 大□ 干斤伊 孝□ 永宣 三日 幹善禪師 天曆三年庚午五月”이라는 화기(畫記)가 있어 1330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7-고려불화-(이동주 감수, 중앙일보사, 1981)
『高麗佛畵』(菊竹淳一·吉田宏志, 東京 朝日新聞社,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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