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질미(阿叱彌)는 통일신라 하대 문경 지역의 호족으로서 「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碑)」 의 건립에 참여하였는데, 명문을 통해 아질미가 선종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단월(후원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의 명문에 "서□대장군 착자금어대 소판 아질미(西□大將軍 着紫金魚袋 蘇判 阿叱彌)"라 하여 호족의 존재 양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스스로 ‘장군’, ‘소판’ 등의 관직을 칭하였다는 사실에서 신라 하대 중앙정부의 권위가 무너진 상태임을 보여준다. 장군이나 소판은 진골 귀족만이 점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름을 '아질미'라고 하여 한자식이 아닌 고유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그가 진골 귀족이 아닌 지방 세력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금어대(紫金魚袋)'라는 표현을 통해 신라 하대에 중국 당나라의 관제가 수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어대제(魚袋制)는 당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는 주머니를 패용하는 제도로서, 3품 이상은 자금어대, 5품 이상은 비은어대(緋銀魚袋)를 허리띠(관대)에 착용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