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질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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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통일신라 하대 문경 지역의 지방 세력가.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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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아질미는 통일신라 하대 문경 지역에서 활동하던 지방 세력가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의 건립 후원자(단월)로 참여한 인물이다. 아질미의 가계와 활동이 자료상으로 나타나지 않아 구체적인 활동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에서 자금어대, 소판(제3관등 잡찬의 별칭)을 칭하고 있어 나말려초 지방 세력의 존재 양태를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다.

목차
정의
통일신라 하대 문경 지역의 지방 세력가.
주요 활동

아질미(阿叱彌)는 통일신라 하대 문경 지역의 호족으로서 「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碑)」 의 건립에 참여하였는데, 명문을 통해 아질미가 선종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단월(후원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의 명문에 "서□대장군 착자금어대 소판 아질미(西□大將軍 着紫金魚袋 蘇判 阿叱彌)"라 하여 호족의 존재 양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스스로 ‘장군’, ‘소판’ 등의 관직을 칭하였다는 사실에서 신라 하대 중앙정부의 권위가 무너진 상태임을 보여준다. 장군이나 소판은 진골 귀족만이 점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름을 '아질미'라고 하여 한자식이 아닌 고유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그가 진골 귀족이 아닌 지방 세력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금어대(紫金魚袋)'라는 표현을 통해 신라 하대에 중국 당나라의 관제가 수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어대제(魚袋制)는 당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는 주머니를 패용하는 제도로서, 3품 이상은 자금어대, 5품 이상은 비은어대(緋銀魚袋)를 허리띠(관대)에 착용하었다.

참고문헌

원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聞慶鳳巖寺智證大師塔碑)」

단행본

이문기, 『신라 하대 정치와 사회 연구』(학연문화사, 2015)
하일식,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혜안, 2006)
전기웅, 『나말려초의 정치사회와 문인지식층』(혜안, 1996)
정청주, 『신라말 고려초 호족연구』(일조각, 1996)
추만호, 『나말여초 선종사상사 연구』(이론과실천, 1992)

논문

이현숙, 「신라말 어대제의 성립과 운용」(『사학연구』 43 · 44, 한국사학회, 1992)
황선영, 「고려초기 공복제의 성립」(『부산사학』 12, 부산사학회, 1987)

인터넷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고대금석문(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gs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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