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고구려 왕족 안승과 그가 이끄는 고구려 유민들을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지역인 금마저에 정착시켜 세운 자치국 또는 보호국이다. 문무왕은 670년(문무왕 10)에 일길찬인 김수미산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에 책봉하였다가, 674년(문무왕 14) 9월에 보덕왕으로 다시 책봉하면서 보덕국이라는 명칭이 등장하였다.
이후 681년(신문왕 원년)에 김흠돌의 난이 진압되자 보덕국왕 안승은 소형 수덕개를 보내어 평정을 축하하였는데, 보덕국이 신라의 정치적 영향 아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683년(신문왕 3) 10월에 보덕왕 안승을 경주로 이주시키고 소판 벼슬과 김씨 성을 하사하면서 결국 보덕국은 성립 10년만에 소멸되었다.
보덕국이 소멸되어 고구려 유민의 공동체가 해체되자 안승의 족자인 대문이 반발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난은 진압되고 대문은 처형되었다. 이후 주민들은 남쪽의 주와 군으로 이주되었으며, 보덕국은 금마군으로 편제되었다.
보덕국은 고구려 유민을 옛 백제 지역을 지배하는 데 동원하려는 이이제이적 성격의 정책으로서 시행되었다. 이 지역의 유력한 백제 세력을 견제하려던 필요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신문왕 대에 대내외적으로 상황이 변화하면서 그 존재의 필요성이 사라지자 해체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