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안막동 고분 ( )

안동 안막동 고분
안동 안막동 고분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 말에서 통일신라 초에 축조된 굴식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 말에서 통일신라 초에 축조된 굴식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개설

안막동 구릉지가 주택단지로 조성되는 것을 계기로, 1988년 11월에 안동대학교박물관이 발굴하였다. 고분의 구조는 봉토(封土)를 갖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발굴 전 크기가 지름 5m, 높이 1.5m 가량 되었고 외관상 크게 파손되지 않았다. 발굴조사후 고분은 1988년 12월 안동대학 안으로 이전하였다.

내용

발굴 결과, 봉토는 지름 약 10m, 높이 약 3m 였으며, 축조는 진흙을 여러 겹 수평으로 다져 쌓는 판축법을 이용하였다. 봉토 내부에서 납작바닥항아리[平底壺] 하나를 발굴하였다. 납작바닥항아리는 약하고 두께도 얇은 편이라 파손이 심하며, 밑에서 위로 완만하게 벌어지며 올라가는데, 구연부 바로 밑에서 약간 오므려 짧은 어깨를 드러냈다.

돌방의 동남쪽에 있는 널길[羨道]은 길이 190㎝, 너비 85㎝, 높이 90㎝이며, 양쪽 벽은 약간 안으로 기울었다. 널길 바닥에는 지름 10㎝ 내외의 자갈이 깔려 있으며, 널길 중앙부에 도장무늬[印花文]의 긴목항아리[長頸壺]가 놓여 있었다. 긴목항아리는 구멍 없는 낮은 굽을 달았고, 굽은 약간 안으로 기울어 있으며, 몸통은 약간 납작하게 눌려지긴 하였으나 거의 구형에 가깝다.

돌방은 밑면보다 위가 좁아지는 돔형을 취하고 있으며, 크기는 밑변 길이 267㎝, 너비 240㎝, 높이 190㎝이다. 네 벽은 1m 정도 수직으로 올라가다가 안으로 기울여 쌓았다. 천장에는 길이 240㎝, 두께 30㎝ 정도의 타원형으로 된 돌 하나를 덮었으며, 내부 천장의 지름은 130㎝에 불과하다. 돌방의 네 모서리는 위로 귀접이형식으로 모를 죽여 올라갔다.

돌방 내부는 거의 시상(屍床)으로 꽉 차 있었다. 널길쪽으로 길이 160㎝, 너비 40㎝, 깊이 40㎝ 정도의 바닥공간만이 있을 뿐인데, 여기에서 장경호 1점을 발굴하였다. 돌방 바닥은 널길보다 40㎝ 정도 낮으며, 시상은 널길 바닥과 거의 같은 높이다.

시상은 모두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입구 맞은 편 벽에 붙어 있으며, 규모는 길이 220㎝, 너비 80㎝이다. 다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널길에서 동방으로 들어가서 왼쪽 벽에 붙어 있는 것으로, 규모는 길이 180㎝, 너비 120㎝이다.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것은 두 번째의 시상에 붙어 있는 것으로, 규모는 길이 180㎝, 너비 50㎝이다.

유물은 첫번째 시상에서 목관고리 1쌍, 관못, 금동세환(金銅細環) 1쌍과 두 번째 시상에서 금동세환 1개, 관못·쇠손칼[鐵刀子]등이 나왔으며, 세 번째 시상에서는 인골 외에 아무런 유물도 출토하지 않았다. 시신은 첫 번째 시상에 1구, 두 번째 시상에 3구, 세 번째 시상에 1구를 매장했으며, 사람이 죽을 때마다 추가로 시상을 만들어 추가장을 실시한 것으로 추정한다.

특징

돌방의 구조적 특징으로는, 길이가 너비보다 넓은 장방형이고, 널길은 돌방의 오른쪽에 붙어 있으며, 돌방의 바닥이 널길 바닥보다 낮고 널길 바닥과 시상 윗면이 같은 높이로 되어 있다. 또한 천장이 돌방 바닥에 비해 매우 작은 원형을 이루고 있고, 네 모서리를 귀접이형식으로 모를 죽여 올라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고구려고분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소들은 풍기지방에서 발견된 두 개의 벽화고분과 비교된다. 이는 경상북도 북부지역이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대로서 두 나라의 문화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장품과 관련해서는, 처음 돌방을 완성하고 천장석을 덮은 뒤 봉토 동북쪽에 토기 하나를 묻었고, 마지막 다섯 번째 매장이 끝난 뒤 널길을 폐쇄하기 전에 널길 바닥에 토기 하나를 놓은 점이 특이하다. 앞의 봉토층에 묻은 것은 돌방을 완성하고 뚜껑돌을 덮은 뒤 거행한 제의토기(祭儀土器)로 추정되며, 뒤의 널길 내에 있는 것은 마지막 장례가 끝나면서 널길을 폐쇄하는 제의용 토기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의 돌방무덤 조성과 관련해 매장의례의 중요한 과정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출토된 토기들은 구멍이 없는 낮은 굽을 단 점, 몸통의 상반과 목에만 이중의 작은 원과 삼각형을 결합한 무늬를 넣은 점 등, 삼국시대의 전형적 토기에서 벗어났다. 즉 문화의 변화상이 고신라에서 서서히 통일신라쪽으로 옮겨가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후반에 걸친 어느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고구려적 요소가 가미된 신라 굴식돌방무덤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고분은 통일신라로 이행되는 시기에 고구려적 요소가 가미된 신라의 무덤양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참고문헌

『안동안막동고분(安東安幕洞古墳)』(안동대학교박물관, 1989)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임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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