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폭. 200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安重根義士紀念館) 소장. 각각의 유묵(遺墨 : 살았을 때에 써 둔 필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 안위노심초사)’ : 세로 149㎝, 가로 38.2㎝의 명주천에 이 8자를 중앙에 행서체로 쓰고, 오른쪽 위 편에 ‘贈安岡檢察官(증안강검찰관)’, 왼쪽 아래편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경술 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라 쓰고, 그 밑에 안중근의 수장인(手掌印)이 먹물로 찍혀 있다.
이 유묵은 안중근이 1910년 3월이토(伊藤博文) 등을 죽이고 여순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을 취조한 당시 여순 검찰청 야스오카(安岡靜四郞)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 야스오카는 사망 직전 장녀 우에노(上野俊子)에게 물려주었으며, 그 뒤 동경 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崔書勉) 원장을 통해 1976년 2월 11일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된 것이다. 그 내용은 “국가의 안위를 마음 쓰고 애태운다.”는 뜻이다.
②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 세로 137㎝, 가로 32.8㎝의 명주천에 이 8자를 중앙에 행서체로 쓰고 왼쪽 아래편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경술 3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라 쓰고, 그 밑에 안중근 자신의 수장을 찍었다. 그 내용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뜻이다.
이 유묵은 안중근이 1910년 3월 26일여순 감옥에서 순국직전, 안중근의사의 공판정 왕래에 경호를 맡았던 일본헌병 지바(千葉十七) 간수에게 써준것이다. 이 유묵을 보관하던 지바가 죽자 그의 부인과 조카딸 미후라가 이어 보관하였으며, 1980년 8월 23일 동경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을 통해 안중근의사 숭모회에 기증된 것이다.
안중근의사 유묵은 1972년과 1991년에 보물로 지정된 것이 있지만, 특히 이 2폭의 유묵은 여순 감옥에서 자신을 취조한 일본 검찰관과 경호담당 헌병에게 각각 써준 것으로, 서예적 가치는 물론 일본인조차 안중근의 충절과 의리에 심복하여 애지중지하던 유묵이란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