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3년(충숙왕 10)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165.5㎝, 가로 101.5㎝. 일본 스미토모가(住友家) 소장. 화사(畫師)·제작 연대·발원자 등이 명확할 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도 뛰어나서 고려 불화사 연구에 다시없는 귀중한 작품이다.
바닷가 기암(奇巖)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관음보살이 전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어깨 뒤로는 괴이한 절벽이 위태롭게 솟아 있고, 여기에 대나무 한 쌍이 겹쳐 있다. 발 아래에는 연못이 있으며 오른쪽(向左) 구석의 바위에는 관음을 올려다보면서 꿇어앉은 선재동자(善財童子 : 求道의 보살 이름)가 보인다.
관음보살은 머리에 꽃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인 보관을 쓰고, 얼굴은 풍만한 편으로 가는 눈, 작은 입 등 의젓하면서도 근엄한 표정이 역연하다. 하지만 1310년(충선왕 2년) 김우문(金祐文)이 그린 양류관음의 얼굴보다는 부드러움이 줄어든 것 같다.
그러나 둥글면서도 부드러운 어깨, 풍만한 가슴, 미끈한 팔과 손 등은 꽃무늬가 수놓인 흰 사라를 통하여 은은히 비치고 있어서 육감적인 아름다움까지 한껏 묘사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염주를 잡고 있다.
이런 지물(持物)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던 것으로 의상(義湘)이 관음을 친견하였을 때 수정 염주 한 꾸러미를 받았던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라 하겠다. 손 옆 낭떠러지 바위 위에는 투명한 수반이 있고, 그 위에 버들개지가 꽂혀 있는 청자 정병이 올려져 있다.
이 그림에 적혀 있는 화기(畫記)에 의하면 1323년(至治 3년) 내반종사(內班從事) 서구방이 그린 것으로 설충(薛冲)이 그린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
얼굴의 표정이 비록 근엄해졌지만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형태, 부드러우면서도 치밀한 선, 빈틈없는 대각선적인 구성, 밝고도 선명한 색채 등 14세기 전반기의 불화 양식이 뚜렷한 걸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