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05㎝. 이 불상은 입구에서 9m 정도 들어간 석굴 속에 안치되어 있다. 불상·광배·대좌가 모두 한 돌로 조각되었다. 시원스럽고 넓은 어깨의 당당한 체구에 정면을 바라보고 서있다.
정수리에는 큼직한 상투모양의 육계(肉髻)가 솟아 있으며, 어깨까지 내려온 긴 귀, 풍만하면서도 우아한 얼굴, 왼손을 몸에 붙여 곧바로 내리고 오른손은 가슴에 댄 모습, 그리고 둥근 어깨선과 평판적인 가슴, 대좌 위에 직립한 자세 등 여러 점에서 719년작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1962년 지정)과 유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인다.
양어깨에 감싼 통견(通肩)의 대의(大衣)는 부드러운 주름을 형성하며 전신을 덮었다. 양팔을 걸쳐 지그재그 모양으로 내려간 옷단은 발목에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특징들은 모두 감산사 불상과 직결되는 동일한 양식이다. 하지만 옷주름이나 띠 매듭 표현 같은 세부 기법에서는 경직된 면이 드러나 시대 하강에 따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光背)는 배 모양의 거신광(舟形擧身光)이다. 전체적인 윤곽이나 세 줄로 이루어진 두광(頭光)·신광(身光)의 구분, 그 구획 안의 꽃무늬 배치 그리고 가장자리 부분의 불꽃무늬 역시 감산사 불상 광배와 유사한 모습이다.
대좌는 2단의 원형 연화문대와 그 아래의 사각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4각의 각 면에는 2구씩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연꽃잎 안에 꽃무늬가 새겨진 연화좌의 모습은 719년작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1962년 지정)의 것과 유사하다.
이 석불이 있는 미타암은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자연 동굴이지만, 인공을 가한 흔적이 뚜렷하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포천산(布川山) 석굴로 비정된다. 따라서 이 석불입상은 8세기 통일신라 불상 양식의 한 계보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라 아미타 사상의 전개 과정은 물론, 당시 성행하던 석굴 사원 조영의 한 단면을 고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