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웃몸을 창방으로 얼개를 만들고 기둥 위와 창방 위에 다시 평방을 놓아 공포를 기둥과 기둥 사이의 평방 위에, 어간(御間)에는 2구(具), 측간(廁間)에는 1구씩 짜올린 다포식 건축이다.
공포는 굽면이 사면이고 굽받침이 없는 주두 위에 외삼출목 내사출목으로 짰는데, 외부로는 살미첨차의 끝이 강직한 앙서[仰舌]로 되고, 안의 주삼포(柱三包)에서는 초제공과 2제공의 끝은 교두형(翹頭形)이나 보[樑]를 받치는 3제공 밑은 초각되었으며, 기타 기둥 사이의 공간포(空間包) 안쪽은 모두 교두형으로 되어 있다.
특히, 전후면의 일부 소로[小累]들은 굽면이 곡면을 이루고 있음이 특색이다. 정면의 창호들은 어간에서는 네 짝의 들어열개 빗살창호로 되어 있으나, 좌우 측간에는 세 짝으로 된 들어열개 빗살창호로 되어 있다. 때문에 세 짝 중 한 짝은 독자적으로 들어열고, 두 짝은 접어 들쇠에 매달게 되어 있다.
전의 내부 구성은 후면 어간양기둥렬과 측면 어간기둥렬이 만나는 자리에 고주(高柱)를 세워 불벽(佛壁)을 형성하고 불단(佛壇)을 놓았다.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전후면으로 빗천장을 형성하고 중앙부에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맞배지붕의 양측 박공부에 풍판을 가설하여 비바람을 막고 있다.
지붕의 전후면 모두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는데, 암막새에 ‘順治十年(순치 10년)’이라는 명문이 있어 이 기와가 1653년(효종 4)에 만들어진 것이며, 나아가 이 전각의 건립이 적어도 이보다 앞선 것임을 알 수 있어, 공포의 양식과 기타 요소들로 미루어 볼 때 이 불전은 조선 초기 또는 중기 초에 건립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더욱이 신흥사 대광전 중수기에 ‘가경(嘉慶) 6년(순조 2, 1802)’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더한층 확실해진다. 이 불전의 내외부에는 많은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데 외부 좌측의 벽화무늬는 퇴화되어 있으나 우측의 것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벽화의 종류는 삼존불상도·팔상도·8대보살도·신장도·설화도 등으로 이들은 단청과 함께 17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