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원칙(元則), 호는 돈와(遯窩). 전북 순창(淳昌) 출생. 아버지는 양언(楊堰)이며, 어머니는 흥성장씨(興城張氏) 장형(張泂)의 딸이다. 양응수(楊應秀)와 유언집(兪彦鏶)의 문인이다.
1774년(영조 50)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그 뒤 벼슬에 진출할 뜻을 버리고 고향의 화산(華山) 밑에 돈와정사(遯窩精舍)를 짖고 후진 교육에 힘쓰면서 주자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양종해는 1797년(정조 21) 어명으로 『주서백선(朱書百選)』을 편찬할 때 서유구(徐有榘)의 초빙을 받아 교정에 참여하였고, 또 정조가 경의(經義)를 물어오자, 조목별로 명석하게 대답하였다.
양종해의 성리학적인 학술은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있어서 심성(心性) · 이기(理氣)의 개념을 간결명료하게 분석하여 시로 표현하였는데, 인성과 물성이 태어날 때는 다 본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지극한 효성과 학식으로 1841년(헌종 7)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돈와유고(遯窩遺稿)』 4권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