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훤(李昍). 자는 문숙(文叔). 숙종의 여섯 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명빈박씨(榠嬪朴氏)이다.
1703년(숙종 29) 5세에 연령군으로 봉하여졌다. 예법에서는 6세 이후에 봉작하는 것이 관례이나, 5세 당시 생모인 명빈박씨가 죽음으로써 주상자(主喪者)가 되었기 때문에 서둘러 봉해졌다. 이때에 대간들의 논란이 많았으나, 왕은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간들을 파직시키기도 하였다.
1705년 연령군의 숙배(肅拜) 때에 교지를 전달할 임무를 맡은 이조정랑 조도빈(趙道彬)이 당일에 늦자 그 자리에서 파직시킨 경우도 있다. 1707년 혼인하였으며, 1711년 천연두를 앓은 바 있다.
1719년에는 형인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과 함께 왕의 기로소 입소를 적극 권유하는 소를 올렸다. 성품이 효성스럽고 근면하여 왕의 간병에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으며, 또한 사제(私第)에 거처하였으나 민간에는 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
숙종이 특별히 사랑하여 제문과 묘지문을 직접 지었다. 도승지 김연(金演)이 초상(初喪)을 주관하였는데, 이는 연령군의 부인이 김연의 종손녀였기 때문이다. 아들이 없어서 숙종이 밀풍군 이탄(密豊君 李坦)의 둘째 아들인 이상대(李尙大)를 그 후사로 삼도록 하고, 이유(李幼)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연잉군과 우애가 두터워 연잉군이 즉위한 뒤에는 왕으로서 연령군의 묘에 자주 치제하였으며, 은신군 이진(恩信君 李禛: 사도세자의 4남)으로 다시 후사를 삼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