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장륙사 건칠 관음보살 좌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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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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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유물
문화재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장륙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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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장륙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보살상.
개설

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86㎝.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복장발원문(腹藏發願文)과 개금묵서기(改金墨書記)에는, “1395년에 백진(白瑨)을 비롯한 영해부(寧海府)의 관리들과 부민(府民)들의 시주로 조성되었고, 위장사 선당(葦長寺禪堂)의 관음보살상을 1407년(태종 7)에 개금한다.”고 되어 있다. 이 불상은 원래 영해의 용두산 우물가에 있던 위장사의 관음상이었으나, 이 절이 폐사되면서 지금의 장륙사로 옮겨 봉안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관음보살상은 조선 초기인 1395년(태조 4)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고려 말·조선 초의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내용

머리에는 금동관을 썼으며, 얇은 금동판을 삼각형으로 만들고 여기에 꽃무늬 동판을 오려 부착한 것이다. 이는 고려 말에 유행한 금동관과 비슷하지만 좀 더 간략화된 것이다. 관과 이마 사이는 머리칼이 띠처럼 되어 있고, 머리 자체는 상투 대신 민머리로 처리되어 다른 고려 보살상과는 다르다.

얼굴은 사각형 모양이며, 눈이 길게 치켜졌고 코도 날카롭다. 그리고 양 입가가 깊게 패어 얼굴 자체가 침잠하면서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러한 인상은 앞으로 숙인 상체의 특징과 함께 14세기 전반기의 보살상들과는 다르게 변모된 것이다. 그러나 상체는 비교적 건장한 편인데, 사각형이면서도 어깨가 자연스럽고 가슴의 양감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는 편이다.

상체에 비하여 하체는 얕은 편이지만 널찍하게 앉아 있는데, 다리의 양감도 어느 정도 있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역시 엄지와 중지를 맞댄 이른바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짓고 있다.

보살의는 양어깨에 걸쳐 입는 통견의(通肩衣)로 가슴을 트이게 하고, 그 사이로 승각기와 군의를 나타냈다. 승각기와 군의에는 독특한 14세기 불보살상의 가사 고리 장식과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전신에 걸친 영락 장식은 복잡하고 화려하여 14세기 전반기 보살상에 표현된 것보다 한층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영락 장식은 팔이나 등까지 번잡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고려 말과 조선 초 보살상들의 영락 장식에 나타나는 경향으로, 당대 보살상 편년 설정에 기본 자료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보살상은 1447년(세종 29)의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1989년 지정)이나 1516년(중종 11)의 문경 대승사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1989년 지정)에 영향을 주었으며, 상원사 보살상이나 낙산사 관음보살상 등과 친연성이 짙어서 15세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주목된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상』(진홍섭, 일지사, 1976)
「장륙사보살좌상과 그 복장발원문」(정영호,『고고미술』128, 한국미술사학회,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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