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방이 주재하였다. 조선 개국초의 우도정역찰방(右道程驛察訪) 소관역을 재편성한 것이다.
관할범위는 한양-고양-파주-장단-개성 등을 잇는 역로와 개성-풍덕, 개성-배천(白川) 등에 이어지는 역로이다. 이에 속하는 역은 고양(高陽)의 벽제(碧蹄), 파주의 마산(馬山), 장단의 동파(東坡), 개성의 청교(靑郊)·산예(狻猊), 풍덕(豐德)의 중련(中連) 등 6개역이었다.
뒤에 산예역과 중련역은 혁파되었다. 영서·벽제·마산·동파·청교·산예역은 대로(大路) 또는 대역(大驛)에 속하고, 중련역은 소로(小路) 또는 소역(小驛)에 속한다. 이 역도는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까지 존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