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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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빈객의 연향(燕享)과 종실 및 재신(宰臣)들의 음식물 공급 등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정3품 아문으로 내려오다가 조선 후기에 종6품 아문으로 격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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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빈객의 연향(燕享)과 종실 및 재신(宰臣)들의 음식물 공급 등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정3품 아문으로 내려오다가 조선 후기에 종6품 아문으로 격하되었다.
내용

이러한 성격의 기관이 출현한 것은 신라 때인 621년(진평왕 43)에 영객부(領客府)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왜전(倭典)을 고쳐 부른 것이다.

그 뒤 명칭이 영객전(領客典)·사빈부(司賓府)로 개칭되었으며, 궁예(弓裔)의 태봉 관제에서는 봉빈부(奉賓部)라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태조 때 예빈성(禮賓省), 성종 때 객성(客省)·예빈성, 충렬왕 때 전객시(典客寺)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예빈시·전객시, 공민왕 때 예빈시로 복칭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 1) 관제를 개편할 때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예빈시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으로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태종 때에는 빈객 연향 외에도 종묘 친향 때 향관(享官)·제집사(諸執事)에 대한 그 날의 음식도 공급하고, 기로소(耆老所)의 춘추연(春秋宴)의 음식 마련도 담당하였다. 이러한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양과 염소, 돼지, 기러기, 오리, 닭 등을 직접 기르기도 하였다.

관원으로는 태조 때에 판사·정경(正卿)·소경(少卿)·승(丞)·겸승(兼丞)·주부·겸주부(兼主簿)·직장(直長)·녹사(錄事) 각 1인을 두었다. 태종 때에 기능을 강화해 판사·정경·소경·주부·직장·녹사를 각각 2인으로 증원하였다.

그 뒤 ≪경국대전≫에 정(正, 정3품)·부정(副正, 종3품)·첨정(僉正, 종4품)·판관(종5품)·주부(종6품)·직장(종7품)·봉사(종8품)·참봉(종9품) 각 1인과 제검(提檢, 4품)·별좌(別坐, 5품)·별제(別提, 6품)를 합해 6인을 두었다.

그리고 호조판서가 겸직하는 제조(提調) 1인이 이를 모두 관리하였다. 이러한 직제는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변개되었다.

≪속대전≫에는 정6품 이상의 모든 관원, 즉 정·부정·제검·첨정·별좌·판관·별제 등이 혁파되고 주부 1인, 직장 1인, 봉사 1인, 참봉 2인으로 구성된 종6품 아문으로 축소, 격하되었다. 이속으로 서원(書員) 5인, 고직(庫直) 1인, 사령(使令) 4인, 군사(軍事) 1인이 있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집필자
이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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