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명여(明汝). 호는 무이재(無貳齋). 전라북도 태인(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출신. 전우(田愚)의 문하이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관찰사 이도재(李道宰)를 통하여 토적소(討賊疏)를 올리려 하였으나 이도재가 거절하여 실패하자, 공주 명륜당에 가서 대성통곡한 다음 아편을 먹고 순절하려 하였으나 교임(校任) 한정명(韓鼎命)의 구원으로 살아났다.
1910년 명강산(明岡山)에서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선영과 스승의 무덤을 찾아 통곡한 뒤 「절명사(絶命詞)」를 남기고, 같은 해 10월 공주 명륜당 강학루에서 목을 매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