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표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을사조약과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자결한 의사(義士).
이칭
명여(明汝)
무이재(無貳齋)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43년(헌종 9)
사망 연도
1910년(순종 3)
본관
보성(寶城)
출생지
전라북도 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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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을사조약과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자결한 의사(義士).
개설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명여(明汝). 호는 무이재(無貳齋). 전라북도 태인(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출신. 전우(田愚)의 문하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관찰사 이도재(李道宰)를 통하여 토적소(討賊疏)를 올리려 하였으나 이도재가 거절하여 실패하자, 공주 명륜당에 가서 대성통곡한 다음 아편을 먹고 순절하려 하였으나 교임(校任) 한정명(韓鼎命)의 구원으로 살아났다.

1910년 명강산(明岡山)에서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선영과 스승의 무덤을 찾아 통곡한 뒤 「절명사(絶命詞)」를 남기고, 같은 해 10월 공주 명륜당 강학루에서 목을 매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기려수필(騎驢隨筆)』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집필자
이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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