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흥(高興). 호는 해사(海史).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출신.
1906년 김상기(金相璣) · 이항선(李恒善) · 노원집(盧元執) 등과 백낙구(白洛龜: 일명 白樂九)를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부장으로서 경찰관서 습격을 기도하는 등 지리산지구에서 항쟁하였다.
그 해 11월 6일 순창의 김상기, 김제의 김병균(金秉均) 등과 함께 하동의 화개동에 집결한 뒤 순천을 공격하던 중 백낙구 의병장이 잡히자 의병들은 흩어지고 자신은 탈출하여 고향에 돌아와 재기를 도모하였다.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고종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정읍으로 찾아온 백낙구와 함께 다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백낙구를 잃었다.
1907년 10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일본군과 격전을 전개하다가 잡혀 1909년 8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유형 15년을 언도받고 복역중 옥사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