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五道)의 성립 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서해도(西海道)는 십도 중 관내서도(關內西道)에서 연원한 곳으로서 일찍 영역이 고정되고 안찰사가 파견되었다.
양광도(楊廣道)는 양주(남경)와 광주, 충주, 청주 등 네 계수관의 관할 구역을 토대로 성립하였다. 고려 말 경기(京畿)가 확대 개편되면서 양주와 광주 지역은 대부분 경기로 편입되었고, 나머지는 충청도(忠淸道)가 되었다.
경상도(慶尙道)는 계수관 경주(동경)와 상주, 진주 관할 지역을 토대로, 전라도(全羅道)는 계수관 전주와 나주의 관할 지역을 토대로 각각 성립하였다.
교주도(交州道)는 본래 십도 중 삭방도(朔方道)의 일부였고 이후 동계(東界)에 속해 있었으나 인종 대 후반에서 의종 대 중반 사이에 분리되었다. 명칭은 처음에 춘주도(春州道)였고, 동주도(東州道)를 거쳐 교주도로 정착하였다.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설치로 인해 남부 지역이 강릉도(江陵道)로 편성되었고, 교주도와 묶어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 혹은 강릉교주도(江陵交州道)라고 하다가 조선에서 강원도(江原道)가 되었다.
오도는 양계와 함께 고려 지방 제도에서 광역 운영 체계의 근간이었다. 신라의 구주(九州) 및 조선의 팔도(八道)와 역사적 선후 관계를 가지고 있어 각 시대의 특성을 살필 수 있는 지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