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 ()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에 운영된 광역 단위의 지방 행정 구역.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고려 전기
공포 시기
고려 전기
시행 시기
고려시대
폐지 시기
고려 말
시행처
고려왕조
내용 요약

오도는 고려시대에 운영된 광역 단위의 지방 행정 구역이다. 고려 성종 때 시행된 십도(十道)가 폐지된 뒤 사신 파견을 위해 필요에 따라 몇 개의 계수관(界首官)을 묶어 도(道)를 편성하였다. 이중 전국적이고 정례적인 안찰사(按察使)가 파견된 지역이 점차 고정되었다. 서해도(西海道)가 가장 먼저 성립하였고, 가장 늦은 교주도(交州道)가 인종 대 후반에서 의종 대 중반 사이에 성립하면서 오도가 갖추어졌다.

정의
고려시대에 운영된 광역 단위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목적

995년(성종 14) 시행된 광역 단위의 지방 행정 구역인 십도(十道)는 1018년(현종 9) 지방 제도가 전면 개편되면서 기능을 상실하였다. 대신 새로 설치된 계수관(界首官)을 몇 개 묶어서 사신의 순찰 구역으로 삼았다. 이후 전국적이고 정례적으로 파견된 안찰사(按察使) 제도가 확립되면서 도(道) 역시 점차 고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내용

오도(五道)의 성립 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서해도(西海道)는 십도 중 관내서도(關內西道)에서 연원한 곳으로서 일찍 영역이 고정되고 안찰사가 파견되었다.

양광도(楊廣道)는 양주(남경)와 광주, 충주, 청주 등 네 계수관의 관할 구역을 토대로 성립하였다. 고려 말 경기(京畿)가 확대 개편되면서 양주와 광주 지역은 대부분 경기로 편입되었고, 나머지는 충청도(忠淸道)가 되었다.

경상도(慶尙道)는 계수관 경주(동경)와 상주, 진주 관할 지역을 토대로, 전라도(全羅道)는 계수관 전주와 나주의 관할 지역을 토대로 각각

교주도(交州道)주1는 본래 십도 중 삭방도(朔方道)의 일부였고 이후 동계(東界)에 속해 있었으나 인종 대 후반에서 의종 대 중반 사이에 분리되었다. 명칭은 처음에 춘주도(春州道)였고, 동주도(東州道)를 거쳐 교주도로 정착하였다.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설치로 인해 남부 지역이 강릉도(江陵道)로 편성되었고, 교주도와 묶어 주2, 혹은 강릉교주도(江陵交州道)라고 하다가 조선에서 강원도(江原道)가 되었다.

의의 및 평가

오도는 양계와 함께 고려 지방 제도에서 광역 운영 체계의 근간이었다. 신라의 구주(九州) 및 조선의 팔도(八道)와 역사적 선후 관계를 가지고 있어 각 시대의 특성을 살필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최정환, 『고려 정치제도와 녹봉제 연구』(신서원, 2002)
변태섭, 『고려정치제도사연구』(일조각, 1971)

논문

윤경진, 「고려말 조선초 동계의 운영체계 변화와 도의 재편」(『한국중세사연구』 44, 한국중세사학회, 2016)
윤경진, 「고려전기 도의 다원적 편성과 5도의 성립」(『동방학지』 135,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6)
홍연진, 「고려전기 도제의 성립과 그 성격」(『부대사학』 17, 부산대학교 사학회, 1993)
주석
주1

강원도 영서 지방의 옛 이름. 우리말샘

주2

고려 시대에 강원도의 지명. 이 도가 설치될 때 충주의 관할이었던 평창군을 예속시켰고, 공양왕 3년(1391)에는 철원과 영평 등을 떼어서 경기도로 이속시키고 명칭을 강릉도(江陵道)로 개칭하였다. 지금의 강원도와 함경도 일부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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