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는 고려 초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설정되어 있었던 특수 지방행정 구역인 동계와 북계의 합칭이다. 대체로 동계는 함경도와 강원도의 일부 지역, 북계는 평안도 지역에 해당된다. 고려 성종 때에 군사관장구역으로 병마사를 설치하였는데 현종 때에 지방행정 구역으로 확정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 1413년에 북계가 평안도, 동계가 영길도(永吉道)로 개칭되면서 지방행정조직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양계는 거의 모든 주현에 지방관이 파견되었고, 군사적인 성격의 방어사(防禦使)·진사(鎭使) 등이 파견되었다. 조세도 중앙에 수송하지 않고 현지에서 군수(軍需) 등에 충당하였다.
양계는 989년(성종 8)에 병마사를 둠에 따라 군사관장구역(軍事管掌區域)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고 병마사가 군사 · 행정의 기능을 가지게 되는 현종 때에는 지방행정 구역으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전기에는 대체로 병마사가 각기 동북 양계의 지방장관의 역할을 하였다.
북계는 광의의 서경 관할구역이므로 서경유수사(西京留守使)가 행정수반이라는 설이 있으나 그럼에도 병마사가 군사 · 행정면에서 직접적인 책임자였다.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는 한때 양계지방의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의 북계 수복 이후 북계는 도지휘사가, 동계는 몽고에 점탈당하지 않았던 남부지역에만 파견되던 안집사(安集使)가 지방장관의 구실을 하였다.
이후 충선왕 때에는 존무사(存撫使)가, 공민왕 말년에는 도순문사(都巡問使)가, 1392년(공양왕 1)에는 도절제사(都節制使)가 양계에서 지방장관의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곧이어 양계에도 이미 제도(諸道)의 지방장관이었던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가 파견됨으로써 양계와 도의 전지역에 걸친 지방행정조직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고려 전기에 춘주(春州)지방이, 그리고 공민왕 때에 강릉지방이 안찰사도(按察使道)가 되어 동계에서 분리되어 나감으로써 나타나던 양계의 특수성 해소 경향의 귀결이다. 전국 지방행정 조직의 단일화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이루어졌다. 1413년(태종 13)에 북계가 평안도, 동계가 영길도(永吉道)로 개칭됨으로써 명실공히 완결되었다.
양계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도와 차이가 있었다. 대체로 도의 지방장관이 안찰사인 데 반해 양계는 병마사였다. 양계는 다시 소도(小道)로 나누어져 감창사(監倉使)가 파견되어 이원적 통치체제가 형성되었다. 그밖에도 군사상의 분도(分道)가 있어 방수장군(防守將軍), 즉 분도장군(分道將軍)이 파견되었고 감찰기관인 분대(分臺)도 두었다.
주현(州縣)의 체제도 도와 달리 속현(屬縣)이 적어 거의 모든 주현에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또 도에는 민사적인 성격의 지사(知事)와 현령이 파견된 것에 반해 양계에는 군사적인 성격의 방어사(防禦使) · 진사(鎭使) 등이 파견되었다.
조세도 도와는 달리 이를 중앙에 수송하지 않고 현지에서 군수(軍需) 등에 충당하였다. 이는 지방군의 숫자만으로도 도의 거의 3배에 달한다는 사실과 함께 군사상 특수지역으로서의 양계의 성격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