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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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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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북계와 함께 양계(兩界)를 구성하던 지방행정구역.
이칭
이칭
동북면, 동면, 동로, 동북로, 동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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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북계와 함께 양계(兩界)를 구성하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동북면(東北面) · 동면(東面) · 동로(東路) · 동북로(東北路) · 동북계(東北界)라고도 한다. 대체로 함경도 이남으로부터 강원도 삼척 이북의 지역이 해당한다.

내용 및 변천

995년(성종 14) 전국에 10도(道)를 설치할 때 화주(和州) · 명주(溟州) 등의 군현을 삭방도(朔方道)로 정한 뒤 1036년(정종 2) 동계라고 칭하였으며, 1047년(문종 1)에는 동북면으로 개칭하였다. 뒤에 함주(咸州) 이북이 동여진(東女眞)에게 침략당하자, 1107년(예종 2) 평장사(平章事) 윤관(尹瓘)과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오연총(吳延寵)을 시켜 수복하게 하고 그 지역에 9성(城)을 설치하였다.

인종 때에는 춘주도(春州道)가 분리됨으로써 동북면의 영역이 축소되었으며, 1178년(명종 8)에는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로 개칭되었다. 그 뒤, 몽고병이 침입해오자 1258년(고종 45)에 용진현인(龍津縣人) 조휘(趙暉)와 정주인(定州人) 탁청(卓靑)이 반란을 일으켜 병마사 신집평(愼執平)을 죽이고 화주 이북지방을 들어 몽고에 항복하였다.

이에 몽고에서는 화주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摠官)으로,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아 이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따라서 동북면의 영역은 쌍성총관부에 예속되지 않은 명주지방에 한정되었다. 1259년에 강원도의 영월(寧越) · 평창(平昌)이 동북면에 이속되었다가 뒤에 환원되었다.

1263년(원종 4)에 강릉도(江陵道)로, 1356년(공민왕 5)에는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로 개칭되었다. 이 해에 추밀원부사 유인우(柳仁雨)를 보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화(和) · 등(登) · 정(定) · 장(長) · 예(預) · 고(高) · 문(文) · 의(宜) 등의 주(州)와 선덕(宣德) · 원흥(元興) · 영인(寧仁) · 요덕(耀德) · 정변(靜邊) 등의 진(鎭)을 수복하였으며, 이수산(李壽山)으도순문사(都巡問使)를 삼아 강역을 정하고 다시 동북면이라 하였다.

1360년에 또 다시 삭방강릉도라 칭하였고, 그 뒤 공민왕 말기에 이르면 삭방도와 강릉도를 분리시킴으로써 삭방도만이 동북면으로 남게 되었다. 대체로 철령(鐵嶺) 이북은 삭방도가 되고 이남은 강릉도가 된 듯하다.

동계는 주로 여진과의 경계를 이루는 국경지대이므로 중앙에서 매우 중시해 병마사 1인을 두고 민정과 군정을 함께 관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병마사 아래에는 지병마사(知兵馬事, 3품) 1인, 병마부사(兵馬副使, 4품) 2인, 병마판관(兵馬判官, 5 · 6품) 3인, 병마녹사(兵馬錄事) 4인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쌍성총관부가 설치되고 동북면의 영역이 축소된 후에는 병마사가 파견되지 않고 동계안집사(東界安集使)가 두어졌다.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이 즉위해 동계안집사를 없애고 교주도안렴사(交州道按廉使)로서 동계의 장관을 겸하도록 하였다. 이어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여 강릉도존무사(江陵道存撫使)를 두었고, 계속해서 공민왕 후년에는 도순문사, 1389년(공양왕 1)에는 도절제사로 변경되었다. →북계, 양계(兩界)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양계(高麗兩界)의 지배조직(支配組織)」(변태섭, 『고려정치제도사연구(高麗政治制度史硏究)』, 일조각,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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