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삼석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정동행성유학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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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왕삼석은 고려 후기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고려 충숙왕 대에 활동한 남만 사람이다. 1320년대 초반 충숙왕이 원에 체재할 때의 인연으로 1325년(충숙왕 12) 귀국하는 왕을 따라 고려에 왔다. 의술에 능해 왕의 총애를 받았다.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바 있으며,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거나 형벌을 처리하는 등 방자하였다. 1330년(충숙왕 17)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의
고려 후기,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
가계 및 인적사항

본래 주1 사람이다. 고려의 주2 장세(張世)가 그 매부이다.

주요 활동

일찍이 상선(商船)을 따라 원(元)의 연경(燕京)에서 살았는데, 1321년(충숙왕 8)~1325년(충숙왕 12) 사이 원에 억류되어 있던 충숙왕(忠肅王)과의 인연으로, 1325년 왕이 귀국할 때 따라왔다. 의술에 능하여 왕이 총애하였으며 사부(師傅)로 칭하였다. 어진 이를 시기하고 능력이 있는 이를 미워하였고,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거나 형벌을 처리하였으며 조정에서 대관(臺官)을 욕하기도 하였으나, 왕은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

사신(史臣) 유사렴(兪思廉)은 “왕삼석(王三錫)은 학술(學術)이 없는 만인(蠻人)인데, 왕이 미혹되어 그를 믿고 측근에 두니, 단지 벼슬을 팔고 송옥(訟獄)을 팔 뿐 아니라 조정에서 주3을 욕보이는 데 이르렀건만 왕이 이를 깨닫지 못하니,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을 멀리하기가 이같이 어렵다.”라고 논하였다.

음양(陰陽)과 주4로 왕을 꾀어 주5·용산(龍山)에 행차하게 하여 오랫동안 머물게 하였다. 1325년 10월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가 용산에서 출산하다가 사망하였는데, 당시 떠도는 글에, “선사(禪師) 조륜(祖倫)과 사부 왕삼석이 왕을 꾀어 오랫동안 바닷가의 용산땅에 머물게 하여 공주로 하여금 주6에서 아이를 낳아 병을 얻게 하였으니, 만약 원나라 황제에게 고하면 두 사람의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동행성유학제거(征東行省儒學提擧)가 되어 주7을 만들려고 하였는데,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 이훤(李暄), 학록(學錄) 신집(申諿) 등이 성균관의 대성전(大成殿)을 닫고 들이지 않으니, 이들을 참소하여 정동행성 이문소(理問所)에 가두고 그들의 관직을 파하였다.

그를 따라 고려에 와서 권력을 행사했던 양장(梁將), 즉 양재(梁載)가 그의 사후에 돌아갔다가, 충숙왕이 다시 입조(入朝)하자 장백상(蔣伯祥)과 함께 흉측한 모의를 구상하였다는 기록을 볼 때, 왕삼석은 충숙왕이 충혜왕(忠惠王)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원으로 가게 되는 1330년(충숙왕 17)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논문

김난옥, 「충숙왕대의 정동성관」 (『역사교육』 141, 역사교육연구회, 2017)
주석
주1

중국에서 남쪽에 사는 이민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원 대의 남만은 지역적으로 남송 지역을 가리킨다.

주2

일정한 직무가 없는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우리말샘

주3

도덕이나 규범 따위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을 단속하던 벼슬아치. 우리말샘

주4

남의 눈을 속이는 기술. 우리말샘

주5

현 서울 용산과 마포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과주(果州)에 예속되어 있던 용산처(龍山處)이었는데, 1284년(충렬왕 10)에 부원현으로 개칭 승격되었다.

주6

몽골식 게르.

주7

공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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