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름이 이복수(李福壽)라고 한다. 평창군(平昌郡) 사람이며, 그의 어머니는 태백산(太白山)의 무녀(巫女)였다.
이숙은 원(元)에 환관(宦官)으로 뽑혀가 주1이 된 인물이다. 충렬왕(忠烈王)에게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1298년(충선왕 즉위년) 3월, 충렬왕의 주2로 즉위한 충선왕(忠宣王)은 또 다른 고려 출신 원 환관 방신우(方臣祐)와 이숙을 벽상삼한정광(壁上三韓正匡)으로 삼았다. 같은 해 충렬왕이 복위한 후 충선왕의 측근 세력들이 충선왕의 주3을 추진하면서 충렬왕의 측근 세력인 한희유(韓希愈)· 송분(宋玢)· 석주(石冑) 등이 숙청되었다. 이에 원 성종(成宗)의 황후 불루간[卜魯罕]과 충렬왕의 측근 세력 간의 교류를 알선함으로써 충렬왕의 측근 세력이 다시 집권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일을 비롯하여 충렬왕이 원에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숙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다.
1304년(충렬왕 30) 11월, 이숙이 원 황제 성종이 내린 어향(御香)을 받들고 오자 왕이 영빈관(迎賓館)으로 나아가 맞이하였으며, 수녕궁(壽寧宮)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이듬해 2월, 평창군(平昌君)에 책봉되었다. 1306년(충렬왕 32)에는 충렬왕의 측근인 왕유소(王惟紹)와 함께 충렬왕의 후계자로 서흥후(瑞興侯) 왕전(王琠)을 세우고 충선왕을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몄다. 1310년(충선왕 복위 2)에 충선왕이 다른 환관들을 봉군하면서 이숙도 평창군으로 다시 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