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양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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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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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 중기에 군사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던 오위(五衛)의 하나.
이칭
이칭
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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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초 · 중기에 군사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던 오위(五衛)의 하나.
내용

좌위를 이루는 것이었다. 조선건국초에 중앙군 조직으로 십위(十衛)가 설치되고 그것이 1394년(태조 3) 십사(十司)로 개편될 때에 그 가운데 용양순위사(龍驤巡衛司)가 나타난다.

그 뒤 중앙군 조직은 여러 번의 변화를 거친 뒤 1451년(문종 1)에 오사(五司)로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용양사(龍驤司)이었고, 이것이 1457년(세조 3)에 용양위로 개편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용양위의 소속 병종(兵種)은 별시위(別侍衛)와 대졸(隊卒)이었고, 또한 관할지역으로는 경동부(京東部)와 경상도 대구진관(大丘鎭管)의 군사가 중부(中部)에, 경주진관의 군사가 좌부에, 진주진관의 군사가 우부에, 김해진관의 군사가 전부에, 안동진관의 군사가 후부에 속하는 등 경성의 동부 및 경상도의 군사가 진관별로 그 예하의 오부(五部)에 분속되도록 되었다.

이와 같은 지방진관 군사의 분속은 대열(大閱) 때에 그 지방에서 징발된 군사들이 용양위에 소속되게 되는 지역별 편성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위(五衛)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문종실록(文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초기(朝鮮初期)의 군사제도(軍事制度)와 정치(政治)』(민현구, 한국연구원, 1983)
『근세조선사(近世朝鮮史) 연구(硏究)』(천관우, 일조각, 1979)
「근세조선초기(近世朝鮮初期) 군사제도(軍事制度)의 성립(成立)」(민현구, 『한국군제사-근세조선전기편-』, 한국군사연구실, 1968)
「조선초기(朝鮮初期) 오위(五衛)의 형성(形成)」 (천관우, 『역사학보』17·18합집,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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