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문신 정온(鄭溫)은 진주인으로 고려 말 대사헌으로 있었으나 나라가 망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말년에는 이 곳에 정각을 짓고 연당(蓮塘)을 만들어 여생을 보냈다.
조선 태조가 개국하여 여러 차례 초빙하였으나 청맹(靑盲 : 보기에는 멀쩡하나 실제로는 못 봄)을 핑계로 다시 출사하지 않았다. 1393년(태조 2)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지금 건물은 1849년(헌종 15) 중수된 것으로 팔작지붕이며, 여기에 우곡선생유허비가 있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