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둘레 약 1,500m. 일명 양산성(梁山城)이라고도 한다. 이 성이 있는 증산(甑山, 130m)은 양산천이 낙동강으로 들어가는 삼각주에 우뚝 솟은 야산인데, 서남은 낙동강에 임하고 삼면은 넓은 평야에 둘러싸여 조망이 좋은 요지이다.
성은 동북에서 서남향으로 길게 뻗은 증산의 높고 낮은 세 봉우리를 이용하여 중앙의 제일 높은 곳에 아성(牙城)을 두고 그 양쪽의 봉우리에 부곽과 외성을 길다랗게 날개처럼 배치하여 이 산 전체가 하나의 성곽을 이루고 있다.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서북면의 중간에는 2, 3중으로 참호(塹壕)를 둘러 성의 외각방어에 대비하였다.
성벽은 청석을 4∼6m의 높이로 견고하게 쌓았으며, 아성의 앞뒤에 성문을 두고 요소요소에 모나게 돌출한 축대를 구축한 것은 다른 왜성의 경우와 같다. 이 산에는 암석이 귀한 곳이므로 축성에 사용한 많은 석재는 강을 이용하여 다른 곳에서 운반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 성벽은 비교적 완전한 편이나 아성에서 서북쪽 부곽을 연결하는 부분은 거의 허물어졌다. 성의 기슭에는 마을이 들어섰고 성곽 안에도 분묘가 산재하고 있다. 또, 주변의 평야는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으나 축성 당시는 이 일대가 늪지대로서 강물이 성 밑에까지 들어와서 선창과 연결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성은 1597년(선조 30) 왜군이 남해안까지 쫓겨 내려와 이곳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방위선을 보강하기 위하여 왜장 모리[毛利秀元]와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가 축성하였고, 구로다[黑田長政] 군대가 주둔, 수비하였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