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7.7m. 석탑 앞에는 석탑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석등이 서 있다. 다만 석탑과 석등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자리가 아닌 듯하다. 곧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로, 829년(흥덕왕 4)에 중창하여 영정사(靈井寺)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1839년(헌종 5)에 지금의 밀양시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의 이름을 다시 표충사(表忠寺)로 고쳤고, 가람 배치도 크게 바꾸었다고 한다. 이 석탑과 석등은 이 때 옮겨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은 단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랐지만, 받침돌이 단층이어서 차이가 있다. 받침돌은 2단으로 된 6장의 바닥돌 위에 5장의 돌을 면석으로 세우고서, 그 위에 4장의 널돌로 덮개돌을 덮은 모습이다. 면석에는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을 새겨 각 면을 두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덮개돌에는 밑면에 부연(副椽)이 있고, 윗면은 완만한 경사를 잡았는데, 가운데 부분에 모난 2단의 굄을 깎아서 몸돌을 받치게 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을 따로 만들어 올렸다. 몸돌에는 매우 넓은 모서리 기둥을 새겼을 뿐 아무런 조각을 더하지 않았다. 지붕돌은 비교적 얇은 편으로, 밑면에 4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다. 윗면인 낙수면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반전(反轉)하였고, 가운데에는 2단의 모난 굄이 있다. 네 귀퉁이의 합각(合閣) 머리에는 풍경을 단 구멍이 있는데, 현재 2층 지붕돌에는 풍경이 달려 있다. 탑신부는 1층 몸돌이 지나치게 높은 데다가 2층 몸돌부터는 1/3로 급격히 체감되어, 전체 균형을 깨뜨린 느낌이 없지 않다.
상륜부(相輪部)는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상태이다. 밑에서부터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寶輪), 그리고 불꽃 무늬로 만든 장식인 수연(水煙) 등을 차례로 얹었지만 정돈된 모습은 아니다. 수연 위에는 길이 1m 가량되는 철로 만든 찰주(擦柱)를 세웠는데, 후대에 보완된 것도 섞여 있는 듯하다.
이 석탑은 받침돌이 단층으로 구성되었고 1층 몸돌이 너무 크지만, 대체로 신라 석탑 양식을 따른 아담한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