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한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2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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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한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2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12년 전우(田愚)·송병화(宋炳華)의 교열을 거쳐 한항(韓恒)·하우식(河祐植)·이기수(李基秀)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전우의 서문, 권말에 송병화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31권 16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전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4에 부(賦)·시, 권5∼11에 소(疏)·서(書), 권12·13에 서(序)·기(記)·발(跋)·명(銘)·찬(贊)·상량문·축문·제문, 권14∼18에 잡저·묘갈명·묘지명·행장, 권19에 가장(家狀)·전(傳)·연보, 권20∼22에 사실(事實), 권23에 심학통편(心學通編), 권24∼26에 고증(考證), 권27에 범학신편(範學新編), 권28에 율려신해(律呂新解), 권29∼31에 중흥사의(中興私議), 부록으로 묘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당시의 거유(巨儒)와 교우 및 제자들과 주고받은 것으로, 30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조성가(趙性家)·최익현(崔益鉉)·정지선(鄭趾善)·송병순(宋秉珣)·전우·허유(許愈)·조성우(趙性宇)·정재규(鄭載圭) 등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성리학에 관한 문답이 실려 있다.

소 중 「의토적복수소(擬討賊復讎疏)」는 1906년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을 대표하여 올린 것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송병선이 의분을 참지 못해 음독자살한 일을 적고, 을사오적(乙巳五賊)과 통감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하려고 하니 허락해달라는 내용이다.

잡저의 「심통성정신도(心統性情新圖)」는 이황(李滉)의 「천명심성도(天命心性圖)」와 이이(李珥)의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를 연구하여, 그 뜻을 밝히고 자신의 견해를 보충하여 이해하기 쉽게 도표를 만들어 해설한 것이다. 「심설(心說)」과 「정설(情說)」은 심(心)·성(性)·정(情)과 이기(理氣)에 대해 문답식으로 논한 것이다. 경전을 근거로 하여 이황·이이의 학설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질지성변(氣質之性辨)」·「기질변(氣質辨)」·「본심변(本心辨)」·「명덕변(明德辨)」·「양지변(良知辨)」·「심성정체용변(心性情體用辨)」·「천인일리변(天人一理辨)」 등에서는 근세의 학자들이 심리(心理)·성리(性理)와 성동(性同)·성이(性異)를 각기 편견으로 주장하여 기담(奇談)과 교묘한 것을 좋아하는 폐단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이황·이이·송시열(宋時烈) 등 선유(先儒)들은 주자학(朱子學)의 전통을 정몽주(鄭夢周)로부터 이어받아 그 정의(精義)와 묘체(妙諦)를 모두 발휘하여 평이하고 명백하다는 것이다. 또 달마(達磨)·육구연(陸九淵)·왕수인(王守仁) 등의 학설을 들어 변론하였다.

「이기책(理氣策)」은 국가의 정책을 담당하는 집사자(執事者)의 자문에 대한 대책이다. 경(敬)과 심(心)을 바르게 가질 것을 주장하였다. 사실의 「우암선생사실(尤菴先生事實)」은 송시열에 대해 3편에 걸쳐 소상하게 저술한 것이다.

「심학통편」은 심학에 관한 문구를 집대성한 것이다. 사서삼경·『주자대전(朱子大全)』·『주자어류(朱子語類)』와, 선유논심(先儒論心)으로 정자(程子)·장재(張載)·소옹(邵雍)·호굉(胡宏)·이동(李侗)·황간(黃榦), 이단논심(異端論心)으로 노자(老子)·석씨(釋氏), 제유논심(諸儒論心)으로 나흠순(羅欽順)·왕수인, 아동선유논심(我東先儒論心)으로 이황·이이·김장생(金長生)·송시열·권상하(權尙夏)·한원진(韓元震)·김창협(金昌協)·기정진(奇正鎭) 등의 심학에 관한 학설 200여 조를 발췌하여 엮었다. 특히 「아동선유논심」에서는 각 조항마다 자신의 견해를 적고 끝에 심학에 대한 혹문(或問)을 붙여 문답식으로 부연 설명하였다.

「율곡전서고증(栗谷全書考證)」은 『율곡전서』의 내용을 각 부문별로 분류하여 고증에 편리하도록 한 것이다. 「중흥사의」는 쇠퇴한 나라를 중흥시키는 방안으로 11조목을 열거하여 경세제민책(經世濟民策)을 피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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