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바탕에 담채. 세로 82㎝, 가로 49.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두량은 조선 후기 영조연간에 활동했던 화원(畫員)으로 조선 후기의 중요한 화원가문의 하나인 경주(慶州)김씨 가문의 일원이다.
김두량은 전통적인 화풍을 따르면서도 남종화풍(南宗畫風)과 서양화법(西洋畫法)을 수용한 인물로 주목되는데, 그것은 초년에 남인(南人)의 실학자 윤두서(尹斗緖)에게서 그림을 배운 영향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월야산수도」는 그가 전통적 화풍을 계승했다고 하는 평의 주요 논거가 되는 작품으로, 늦가을 달밤 급류가 흐르는 비탈진 계곡의 스산한 경치를 묘사한 그림이다. 전반적인 구도, 해조묘(蟹爪描)의 수지법(樹枝法), 바위와 언덕의 준법(皴法) 등에서 전통적인 화풍을 따랐음을 보여준다.
잎이 진 가지와 급류의 자신 있고도 활달한 묘사는 작가로서의 대담함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화면 왼쪽위에 ‘甲子仲秋金斗樑寫(갑자중추김두량사)’라는 관기(款記)로 그의 나이 49세 때인 1744년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남종화풍이 폭넓게 수용된 시기에 이러한 작품을 제작한 것은 그의 보수적 일면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같은 해에 김두량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사계산수도(四季山水圖)」를 아들 김덕하(金德夏)와 함께 그렸는데, 「월야산수도」와는 화풍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것은 김두량이 작가로서의 원숙기에는 화풍을 의도에 따라 바꿀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